[마왕퇴와 그 이웃-8] 주은래周恩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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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퇴 발굴의 주연은 당연히 마왕퇴 무덤일 것이다.
그러나 이 발굴은 당시 중국의 정치적 정세가 무척 불안정했기 때문에
당시 중국의 민도와도 겹쳐 수많은 이야기를 낳았다.
마왕퇴의 스토리를 만드는데 거든 조연을 순서대로 소개해 보겠다.
가장 먼저 주은래-.
소위 중국 공산당의 영원한 2인자로
국공내전 이전부터 시작해서 그가 마지막으로 세상을 뜰 때까지
실각한 적도 없고 항상 마오의 바로 아래 2인자 자리를 지켰다.
그렇다고 해서 이 인물이 항상 주은래의 비위를 맞추기만 했던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마오를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그 혼란의 시기에 나침반처럼 항상 가야 할 방향을 가리켰다고 해도 되겠다.
주은래는 마왕퇴 발굴에서도 그런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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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퇴가 전한 시대 무덤이라는 것이 확인되고
그 안에서 무지막지한 유물과 심지어는 당시 사람의 시신까지도 미라화해서 발견되었을 때
중국 민중의 흥분은 둘째치고,
당시 중국 문명을 풍비박산 내고 있던 문화혁명 와중의 홍위병 타겟이 되어
마왕퇴고 나발이고 지주계급 유산이라면 깡그리 다 태워버려야 한다는 주장이
정권 최정상부에서도 나왔다.
이런 때 마왕퇴에 쳐들어가려는 홍위병을 막고
거의 목숨을 걸어놓고 작업한 것이나 다름없던 당시의 중국 고고학자, 그리고 의학자들의
방풍림 역할을 해준 이가 주은래로,
그는 이때 당시 이미 중병을 앓고 있었다고 하지만
다 태워버려서는 안 되고 연구를 해야 한다는 그의 서명은 문화혁명의 와중에서 막강한 힘이 있었다.
마왕퇴를 이야기하는데 있어 주은래는 빼 놓지 않고 이야기 되어야 할 사람 중 첫째로 꼽을 만한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