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만든 목적이 달랐던 족보들

신동훈 識 2025. 10. 6.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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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문 세보

 

우리나라 20세기 대동보의 성격에 주목해야 한다고 필자는 누차 쓴 바, 

19세기 후반까지도 우리나라 족보들 중에는 

서자를 서자라고 그대로 쓰거나 

아예 서자는 족보에서 뺀 족보들이 꽤 있었다. 

필자가 조선시대 족보를 전부 확인하지 못했으니 백프로 장담은 할 수 없다만 

필자가 확인한 족보들 중 상당수는 그랬다. 

이 족보들은 그 자체 공문서의 성격이 있어 

이 족보에 실린 사람들의 사정 등은 봐주지도 않은 것이 

서자인지 적자인지 헷갈리거나 

남은 기록이 서로 다른 경우에는 

꼼꼼히 이를 검증하여 사실 여부를 적어 놓기까지 했는데, 

예를 들어 어떤 문서에 서자로 적혀 있으면

이를 악착 같이 찾아 굳이 쓸 필요도 없는데 이런 문서에는 서자로 적혀 있다고 굳이 한귀퉁이에 적어 놓는 것이다. 

글의 마지막에는 "아마도 잘못된 기록일 것이다"라고 적어 놓긴 했는데 

잘못된 기록 같으면 왜 질정하여 삭제하지 않고 굳이 적어두겠는가, 

이런 족보의 기록은 당시 족보가 여기 실리는 사람들의 입장같은건 그다지 관심이 없고

족보의 공증성에 더 관심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던 것이-. 

20세기 들어오면 신문에 빈번히 실리는 것이 

무슨 무슨 성 대동보를 만드니 수단한다는 광고이며 

적어도 일제시대 족보에서는 더 이상 서자에 대한 기술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서자의 기록이 족보에서 사라지는 것이

생각보다 무지하게 뒷 시대의 이야기 인 셈이 되겠다. 

물론 집안에 따라서는 이러한 동향이 더 일찍 시작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서자 없는 족보, 모든 종원이 다 실리는 족보란 20세기 들어와서야 비로소 보편화했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지 않을까 한다. 

뒤집어서 말하면 20세기 초반이 되면 비로소 족보는 공증서류의 위상에서 해방되어 

족보에 실리는 당사자들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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