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이야기

만만하지 않은 서자들-노상추 일기의 백미

신동훈 識 2026. 5. 26.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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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노상추 일기 외에도 부북일기 등 

조선시대 당시 출신군관의 일기는 처음이 아닌지라, 

노상추 일기는 그 일기에 써 있는바,

영남사족들이 차별받고 있다는 불만, 이것 때문에 뜬 듯 하다. 

부북일기가 그 사료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여성과의 염문에 대한 기록으로 졸지에 유명해 진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사실 부북일기의 저자들이 당시 다른 사족들과 비교해서 그다지 성적으로 분방했던 이들도 아닌듯 한데

일기에 그만 덜컥 그 이야기를 남겨 유명해져 버렸던 것처럼, 

노상추 일기에서 쓴 것처럼 당시 영남지역이 유독 차별을 받는 상황도 아니었다. 

오히려 서울 근교의 사족이 절대 우위를 점하는 우리 역사에서 볼때 

이 지역 사족들이 대거 중앙에서 활동한 16세기가 비정상이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각설하고-. 

노상추 일기에서 출신 군관 생활은 필자가 보기엔 그다지 새로운 것은 없다. 

오히려 노상추 일기의 백미는 그에서 보이는 서자들의 행동에 있다. 

이것이야말로 다른 기록에서는 드문 것으로, 이 집안은 서자들과 적자들의 갈등이 심했던 바, 

언젠가 김단장께서도 소개한 것 같지만, 서자들이 적자들에게 자기들도 족보에 이름을 올려달라고 집요하게 요구하는데, 

문제는 이 요구가 서자들의 경제적 힘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음이 틀림없다는 데 있다. 

실제로 서자들이 적자들을 위협할 정도로 경제적 힘이 커져 버린 것이겠다. 

이 당시 노상추 집안은 그래도 족보를 교정하면서 서자들 이름에서 서자라는 글자를 다 지우지 않고 남겨뒀던 모양인데, 

서자 일가가 한 명 찾아와 그 족보를 보고는 분기탱천하여 그 페이지를 박박 찢어서 들고 가버렸다는 것이다. 

노상추 일가는 그 서자 일가에 대해 무척 불쾌했던 모양지만, 필자가 보기엔 결국 그 서자들은 족보에 서자란 감투 벗어버리고 이름을 실었을 것이다. 

사실 서자들이 만만하겠는가? 

19세기에 유학이라는 호칭을 달고 전통의 사족들과 경쟁한 이른바 모칭 유학들은 그 출신이 서자이건

아니면 평민이 상승한 것이건 간에 만만한 이들은 하나도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들이 그 신분제 강고한 세상에서 그걸 다 뚫고 족보에 번듯이 양반 비스무리 하게 이름 올리고, 

호적에도 유학으로 바꾸어 실었는데, 이들이 어떻게 만만한 이들이겠는가? 

필자가 보기엔 19세기 말, 구한말 그리고 20세기 초, 

크게 출세하고 돈을 번 사람들은 전부 이들 모칭 유학들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건 일본도 그런데, 

일본 역시 메이지유신후 전통의 고급 사무라이들은 화족으로 편제되어 귀족 대접 받은 이들 빼고 나면 

변변히 성공한 이들이 별로 없다. 

전부 바닥에서 박박 기다가 메이지유신으로 기회를 잡은 이들. 

이들이 성공해서 새 시대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말이다. 

한국도 그랬을 것이고, 20세기 한국사의 주역은 거의 모두 19세기 모칭 유학들의 후손일 것이라 필자는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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