뜯어보면 암것도 아닌 만인소 연명 서명자들

앞에서 만인소 이야기를 한 번 썼는데 좀 더 써 본다.
만인소라는 것이 소두라는 사족 어르신이 있고,
이 사람 발의로 서원과 향교에 통문을 보내 사족들 서명을 받아 완성된다.
흔히 만인소라는 것이 백성의 소리 어쩌고 하지만,
이 만인소가 요즘처럼 무슨 서명 좌판 깔아 놓고 지나가는 사람 서명 받아 제출하거나
인터넷 서명받아 국민청원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만인소 서명은 서원과 향교(주로 서원)를 타고 내려갔고,
여기 서명은 하고 싶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여기 서명한 사람들은 앞에도 썼지만, 청금록 향안에 이름 올린 사람들과 대개는 겹치는 인물들로,
향촌에서 나름 힘 좀 쓴다는 전통의 호프, 사족들이 되겠다.
이 사람들이 만인소를 쓴 즈음에는 18세기를 넘어 이미 19세기라
앞에도 쓴 것처럼 동네마다 모칭 유학幼學이 바글바글 할 때였다.
전체 70프로가 유학이라 하지 않나?
이보다 불과 100년 전만 해도 한 마을에 유학은 몇 명 되지도 않았고,
양반 중 하류들은 업무, 업유라도 하나 걸리면 그걸로 양반 치레하며 군역이나 피하면 감지덕지하던 시대였다.
그러던 것이 불과 100년 만에 경천동지로 동네마다 그 높은 유학 어르신이 바글바글하게 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도, 전통의 명가는 자존심이 있으니, 내가 저런 근본 없는 놈들하고 같이 놀 수 없다 하여
따로 장부를 하나 만들어 여기 이름 올라와야 양반이라고 하니,
흔히 조선후기 향촌 질서를 이야기하면서 엄청 중요한 배후의 힘이 바로 이런 청금록, 향안이라고 하니,
정말 과연 그런가 이거다.
청금록, 향안이 대단하다고 생각한 것은 거기 들어가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로,
모처럼 소두가 사람들을 모아 서명을 받아 만인소를 꾸려 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유학밖에 없네?
동네에서 잘 나간다는 사람들 모아 봐야 몽땅 유학이고,
그 중에 정말 가물에 콩나듯 진사,
아니 시골이라 진사도 귀하여 생원들만 가끔 보이는 판이니,
만인소가 사족의 연명 상소가 아니라, 유학의 연명상소가 된 판이라.
이 만인소를 올려 정조가 울었다는 점만 강조하는 걸 보는데
실제로 만인소는 여러 번 있었고,
만인소가 주장하는 것도 서원철폐 반대, 조선책략 반대 등
황당하기 짝이 없는 주장이었던 데다가,
정부에서 만인소를 받아 보니 99프로가 유학이니,
잘 알았다, 가서들 쉬어라,.
하고 돌려보낸 것이 바로 만인소다 이 말씀이다.
만인소에 이름 들어가 있는 이들은 이로써 나는 역시 양반이야 할지 모르겠지만,
어차피 나랏님 보기에는 그 동네 모칭 유학이라는 가짜 유학이나,
와서 황당한 이야기를 상소한 저 동네 유지라는 유학이나,
재산으로 보나 학식으로 보나 별 차이도 없는 것 같으니,
시골 선비님들 좋은 말로 돌려보내라,
하고 처리한 것이 만인소다... 그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