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매머드를 찾아 떠난 일본길] (1) 휴가가 되어버린 출장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9. 27.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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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15년 7월 1일자로 오랜 기간 몸담은 연합뉴스 문화부 문화재 담당 기자 생활을 접고 동 회사 전국부 데스크로 발령 났다. 장장 17년에 달하는 문화재 담당 기자 생활을 접기 직전인 그해 6월 15일부터 같은 달 17일까지 2박3일 일본행이 나로서는 마지막 해외 출장 취재였다.

인사 발령 당시 나는 독일 본에 있었다. 한국이 신청한 백제역사유적지구와 일본이 신청한 메이지시대 산업혁명 유산군의 세계유산 등재를 결정할 제39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취재를 위해서였다. 이것이 내 기자 생활 마지막 해외 출장이었지만, 엄밀히 이때는 전국부 소속인 까닭에 문화부 기자로서의 일은 아니었다.

따라서 이보다 약 보름 전에 있었던 일본행이 문화재 기자로서는 마지막 해외 출장이었다고 하는 것이다. 다만 이 여행은 해외 출장이라고 하기에는 저어되는 측면이 있으니, 그 이유는 나중에 말하겠다. 

6월 15일 오전 9시, 나는 조운연 당시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자연문화재연구실장 겸 천연기념물센터장과 동 센터 고생물학 박사인 임종덕 학예연구관, 그리고 이일범 대전오월드(대전동물원) 동물관리팀장과 함께 김포공항을 출발한 KE 2707편을 이용해 2시간 만에 도쿄 하네다 공항에 안착했다.



마쓰모토성



우리 일행은 리무진 버스로 신주쿠역으로 이동해 그날 오후 2시 마츠모토 행 기차에 탑승했다. 우리를 실은 기차는 약 2시간40분 만에 마쓰모토 역에 도착했다.

그에서 우리는 재일교포로 이 지역 생수업체를 운영하는 박희원 선생과 조우했다. 우리가 마쓰모토로 간 까닭은 박 선생이 수집한 고생물, 특히 매머드 관련 화석을 기증받기 위함이었다. 더욱 정확히는 기증서에 도장을 받은 요식 철차를 밟을 예정이었다.


물론 나는 그 과정을 독점 취재하기로 되어 있었다. 이일범 팀장이 합류한 까닭은 박 선생과 사적인 인연이 그전부터 많았으며, 정확치는 않으나 기증 건에 다리를 놓은 것으로 안다. 실제 현지에 가서 확인해 보니 이 팀장은 거의 칠순을 앞둔 박 선생을 시종 “형님”이라 불렀으며, 가족끼리도 잘 아는 듯했다.  

매머드가 어떤 동물인가? 공룡과 함께 사라진 고동물을 대표하는 양대 주자 아닌가? 하지만 그런 매머드 화석이 국내에는 제대로 된 컬렉션이 없다. 물론 개인이 더러 소장하기는 했지만, 수량이나 온전한 개체를 갖춘 일은 드물기만 하다.

반면 박 선생이 수집 소장한 컬렉션은 우선 규모가 엄청 나서 그가 안내하는 컬렉션을 보고는 내가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그가 우리를 안내하면서 직접 보내준 컬렉션은 두 군데였다고 기억한다. 하나는 마쓰모토 시내 회사 사무실이었고, 다른 한 군데는 어느 별장이었다. 회사 사무실에서는 박 회장 자신이 시베리아에서 발굴했다는 털 매머드 피부 조직도 있었다.

살펴 보니 매머드 화석 규모는 그야말로 매머드 급이었다. 각종 두개골과 상아는 물론이고, 도대체 매머드 화석이 개체 기준으로 몇 마리인 줄 짐작도 모를 정도였다. 

 

신나게 매머드 화석을 설명하는 박희원 회장(오른)과 뾰루퉁한 오일범. 기증 안한다 했기 때문이다.



이런 자료들을 몽땅 기증받으면 우리도 남부럽지 않은 매머드 컬렉션을 갖춘 국가가 될 것이 한밤중 모닥불 보는 듯했다. 더구나 이런 화석류를 천연기념물센터가 갖추게 된다면 일약 이 선테는 한국을 대표하는 자연사박물관으로 우뚝 서게 된다.

이런 막대한 매머드 화석을 기증받을 예정이었고, 더구나 그 과정을 연합뉴스가 독점적으로 취재하기로 했으니, 당연히 회사에는 이런 사정을 보고하니 출장 허가가 떨어졌다. 작금 김영란법으로 난리거니와, 출장 관련 여비 부담 여부는 함구하되 이 부분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한국 언론계에 사정이 밝은 사람이면 누구나 다 짐작할 줄로 안다. 

한데 출발을 얼마 앞두지 않고 돌발변수가 발생했다. 이번 기증건 취재를 주선한 임종덕 연구관이 “박 회장님이 언론보도에는 난색을 표해서 보도를 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나로서는 그 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여러 사정을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사정 중의 하나로서 내가 지금도 기억나는 것이 이런 대목이 있었다. 이런 자료를 한국에 기증한다는 것을 일본 국내에서 미리 안다면 민감하게 반응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무슨 사건이었는지 언뜻 기억나지 않으나, 아마도 과거사 청산문제를 두고 당시 한일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는 중이라, 국립문화재연구소나 박 회장 모두 극도로 이런 주변 사정을 고려했다. 나로서는 그런 사정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리 되고 보니, 골치 아픈 문제가 봉착했다. 나는 분명히 이런 건으로 회사에 얘기해서 일본 출장을 사전에 허락받았는데, 그 이유가 소멸되고 만 것이다. 공무 출장을 다녀올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일본을 가도 관련 기사를 쓸 수가 없으니, 출장 이유가 소멸되고 만 것이다.

 

강렬한 매머드 포스



그렇다면 어찌할 것인가?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공무로 인한 출장이 아니라 휴가를 내서 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실제 휴가를 내고 일본을 갔다. 

이 글을 쓰는 2016년 9월 27일 오늘 오전. 문화재청에서는 ‘한국인이 발굴한 빙하기 희귀 화석 표본, 국내로 기증’이라는 제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이에 의하면 국립문화재연구소가 1,300여 점에 달하는 빙하기 시대 포유동물 화석을 확보했으며, 이를 10월 말 특별전을 통해 개중 중요 표본 화석은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라고 한다.

연구소가 기증받았다고 하는 고동물 화석이 바로 박희원 회장 컬렉션이다. 내가 일본을 다녀온 지 대략 1년 3개월 만에 비로소 이번 기증 건이 대외로 공포되었다. 참으로 지난한 시간이었다.

나로서는 감개가 무량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못내 회한은 없지 않다. 저 기증건은 내 손으로 마무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마무리란 담당 기자로서의 그것을 말한다. 내 손으로 참으로 멋지게 박 회장의 고생물 화석 기증을 포장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 또한 어찌하랴? 운명인 것을....(2016년 9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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