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아 놓으면 돌림병이 돌던 시대

장기간에 걸친 군사 원정에서 최대의 적은
적군이 아니라 질병이었다.
특히 젊은 병사들을 모아 놓으면 그 안에서 별의별 전염병이 다 발생하는 바,
더우기 병사들에게 보급이라도 제대로 안되면 영양까지 부족한데다
좁은 공간에 사람들이 밀집해 있으니 한 번 전염병이 돌면
멀쩡한 군대 하나 박살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 처럼 티푸스로 결단 난 가장 유명한 사례가 1812년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으로
원정군 중 러시아와 교전 중 사망자가 10만명 정도인데 반해
20만명 정도가 티푸스를 비롯한 감염병으로 병사한 것으로 되어 있으니,
그 위력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동양도 마찬가지로,
남의 나라 쳐들어가면 절대적으로 위험한 것이 바로 이러한 전염병이니
우리나라가 외적의 침입에 왜 청야전술을 썼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일단 먹을 수 있는 식량을 깡그리 태워버리고 시간끌기로 버티면
침략균은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는 것이니,
우리나라로서는 청야전술과 시간 끌고 버티기야말로
전통시대 수천년 동안 한국을 살아 남게 한 탁월한 전술이었음에 틀림없다.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에 이러한 청야전술과 시간끌며 버티기 전술이 안통하게 된 것은
근대적 위생관리와 체계적 군수 보급이 확립된 이후라고 할 수 있으니,
임진왜란 때는 통하던 의병이 근대화한 일본군을 상대로는 속수무책이었던 것은,
단지 무기의 차이만은 아니라 할 것이다.
아무리 무기가 좋아도 감염병이 돌기 시작하면 대군도 순식간에 무너지는 것은 나폴레온 군이 잘 보여주는데,
19세기 말 일본군은 이미 군대 내의 위생관리에 있어 그 수준은 넘어서 있었다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