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이야기

향촌 중인, 묘한 계급의 사람들

신동훈 識 2026. 5. 16.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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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쓴 북방 사민 이야기를 이어서 계속 쓴다. 

조선시대 호적을 기반으로 향촌 사회를 연구한 논문을 보면, 

이런 사람들이 있다. 

향촌 중인

완전히 정착한 용어는 아닌 것으로 아는데, 

호적을 보면 어떤 사람들은 가리키는지 금방 안다. 

이들은 농사 짓는 평민은 아니다. 

대개 직역을 보면, 양반 직역인 유학을 받거나 

아니면 그 아래의 업무, 업유 등 직역을 받은 사람들로 

삼년에 한 번 만드는 식년 호적을 따라가다보면 
이 집안은 직역이 계속 흔들리고 변동하는 것을 알게 된다. 

예를 들어 노비를 수백 명씩 거느린 주호는 직역이 대대로 "유학" 아니면 번듯한 관직명으로 기록되지만, 

이 사람들은 집에 노비도 5-6구 정도이며, 무엇보다 직역이 계속 흔들려 자기 당대에도 유학과 업무, 업유를 오갈 때가 있고, 

자손으로 내려가면서 그보다 더 아래 군관까지 내려가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가 다시 그 후의 호적에서는 유학으로 복귀하기도 하고, 한마디로 부침이 심한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굳이 한 마을의 사람들을 반상제로만 나눈다고 하자면, 

평민인 상민으로 갖다 붙이기는 어려운 이들이다.

무엇보다 호적의 직역을 보면, 

이들은 군역을 지지 않았음이 확실하다. 

시카타 히로시의 연구에서는 확실히 양반으로 들어갔을 테고, 

반상제로만 나눠봐라 하고 이야기 한다면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 양반 쪽 끝머리에 붙여 둘 사람인 것이다. 

호적에서 확인되는 이런 사람들은 족보를 보면 거의 양반으로 코스프레 되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유학, 업무, 업유 아니면 하급 관직이라도 어떻게든 받아 놨으니 

족보를 보면 이 사람들은 사족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 사람들은 조상을 따져 올라가 보면,

거의 모두 제대로 된 양반에서 이어지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18세기 향촌사회의 호적에서 제법 많이 보이는데, 

이들이 바로 조선시대 기록에서 자주 나오는, 

"과거를 볼 생각도 없는 놈들이 양반을 가탁하여 놀고 먹는 놈"에 해당한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들은 최근 논문에는 "향촌중인"이라든가, 

임란 이후의 "교생", 

청금록에 못 끼어들어간 양반 모칭자들과 같은 사람들인데, 

전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을 이야기 하는 것으로, 

당시 호적을 보면 이런 부류의 사람이 꽤 있는데 

대개는 혼자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3-4대 위부터 그 후손들이 모두 비슷한 처지에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람들을 "향촌 중인" 혹은 "군역자이지만 실제로 부담하지 않는 상층 군역자" 등의 이름으로 부르는데, 

만약 당시 이들을 대면하여 당신의 신분은 무엇인가, 라고 물어 봤다면 백프로

나는 양반이요, 라고 했을 사람들이다. 

다시 말해 향촌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이들은 양반에 끼워주기를 꺼리고, 

실제로 직역도 양반 계층의 직역보다 아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평민의 직역도 아닌 이들이, 

팔고조도를 그리라면 척척 그려내고 또 그대로 호적에도 다 표시되어 있는데

어떤 때 보면 양반 비스무리한 지위가 크게 흔들려 평민에 준하는 직역을 한두 번 받아가 얼마후 식년 호적에는 다시 양반직역으로 복귀하는 이들, 

이들이 바로 서자의 후손인 이들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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