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감기가 긴 역사 논문 vs. 휘발성 강한 과학 논문
필자는 고고과학 관련 일을 하기 전에는
다른 연구자들처럼 의학 관련 연구를 하고 논문을 썼는데
지금까지도 그 논문 중에 계속 읽힐 만한 것은 한 편도 없다.
그 당시에는 그래도 읽을 만하니 소위 말하는 SCI 학술지에 실렸을 텐데
이미 20년 훨씬 넘게 세월이 흘러버리니
의학논문이란 것은 그 세월을 버텨
약발을 유지할 만한 논문이라는 것이 별로 없다.
이건 필자만 그런 것이 아니고 다른 자연과학자, 의학자들도 거의 비슷하다.
자연과학과 의학 연구자들 중에 평생 연구로 정년 때쯤 연구서 한 편 내기가 어려운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이미 정년 때 쯤되면 한참 활동할 무렵 논문들이 모두 약빨이 다해서
책으로 써 봐야 전부 옛날 이야기에 굳이 책으로 쓰기도 민망해 지는 까닭이다.
의학자나 자연과학자들 사이에는 인문학자들처럼 "전집"이라던가 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도 이런 이유다.
그에 반해 인문학 관련 논문들은
필자가 보기엔 수명이 길다.
읽는 사람이 많지 않아 학계에 임팩트는 자연과학이나 의학처럼 시끄럽고 요란하지 않지만,
대신에 약발이 아주아주 오래가는 것이다.
인문학자들이 자기 글을 모아 전집을 내거나
아니면 정년 즈음에 자기 글로 책을 꾸리는 것이 가능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필자가 최근에 60을 넘어서면서 지금까지 해온 일의 작업을 정리하며
하나씩 책으로 내고 있는데
지금 느끼는 생각은 뭔가 하니,
필자가 의대교수를 하며 쓴 고고과학 관련 논문들
고고기생충이라던가 미라, 그리고 고인골에 대한 논문들은
그래도 의대 논문들에 비해서는 반감기랄까,
약발이 확실히 길다는 생각을 한다.
아마 다른 의학논문들처럼 휘발성이 강하다면
필자의 이런 정리작업이라는 것도 의미가 없었을 텐데
다행이 20년여 년 전 이 분야 초창기 작업들도
여전히 누군가는 인용하고 아직도 그 효용성을 다하지 않았다는 생각이다.
요는 가늘게 오래 가느냐
굵고 짧게 사는가 인데,
따지고 보면 사이언스 네이처를 장식하는 최근의 고고과학 논문들
이 논문들은 떠들석 하지만 최신 연구기법에 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반감기가 매우 짧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마도 10년 뒤에도 계속 인용될 논문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이건 꼭 고고과학 논문들만 그런 것은 아니고
사이언스 네이쳐에 실린 논문들이 다 그렇다.
출판과 함꼐 인용이 급증하고 큰 화제가 되지만
10년이 지나고 나서까지 그 약발이 유지되는 논문들이 그렇게 많지 않은 것이다.
활동이 너무 많으면 오히려 수명이 단축되는 것이 인간의 삶인데,
논문 역시 비슷한것 아닌가 모르겠다.

*** [편집자주] ***
전 세계적으로도 이른바 문과대 인문학이 자연과학에 견주어 연구생명이 긴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다만, 인문학 쪽 생명이 길다 함은 그만큼 침체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가 매양 간섭하는 역사학과 고고학, 난 이들 학문을 실은 자연과학으로 보는데, 문제는 자연과학이어야 할 이들 분야가 문과를 장착해 주구장창 같은 사람이 수십년, 그것을 넘어 반세기를 해 먹는가 하면 심지어 죽고 나서도 계속 해먹는다는 심각성을 지적하고 싶다.
아무리 훌륭한 논문도 자연과학이건 인문학이건 그 생명은 10년을 넘어서는 안 된다.
계속 그 모양이니, 내가 지금 당장 학교나 연구실을 박차고 3~4년 놀다 와도 여전히 연구자 대접 받지 않겠는가?
그만큼 썩어 문드러져서 변화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특히 고고학이 그렇다는 사실은 나는 용납할 수 없다.
10년이 넘은 연구는 시궁창에 던져짐을 당해야 한다. 그래야 발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