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병원의 전신: 우에무라 외과
1925년에는 경성에 있는 우에무라植村 외과 광고가 있다.
우에무라는 경성의전병원의 외과 과장으로
백인제 선생 스승에 해당하는 사람이다.
당시에는 자기 병원을 따로 갖고 대학교수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지금은 불가능하다).
우에무라 교수는 일본으로 돌아가기로 하고
자신이 따로 운영하던 우에무라 병원植村病院을 인수할 사람을 물색했는데
당시 경성의전 외과의국에서 가장 특출한 재능을 보인던 선생에게 자신의 병원을 넘겨주었다.
이 백인제 병원이
나중에 조선 굴지의 백병원으로 성장하게 된다.
*** [편집자주] ***
저 병원 설립자 식촌준이植村俊二에 대해서는 국사편찬위원회 인명 사전 제공 서비스가 있다.
이에 의하면 1935년 현재 59세이며, 1876년 9월 15일생이이다.
愛知縣 海部郡 八關村이 원적이며 현주소는 1) 京城府 永樂町 2ノ85 2) 京城府 西大門町 1丁目 58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하나는 집, 하나는 병원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버지는 植村玄秀이며, 어머니는 植村琴(1845년 6월생)이다.
가족관계를 보면 배우자로 1) タカ(1893년 6월생. 熊本市 大江高等女學校 졸업. 俳諧, 刺繡, 書道에 취미가 있음) 1) 植村孝子(1887년 6월생)가 기록되어 있는데 나이 차이가 꽤 난다.
장녀 植村好子는 京城第一高等女學校를 졸업했다 하며, 장남 植村高政(장남, 1909년 11월생)라 하면서 植村春子(장녀, 1909년 4월생)라 해서 또 장녀가 있으니 이런 착란이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겠다.
동생 植村尙淸은 현재 의학박사로서 札幌市에서 內科病院을 개업하고 있으며, 櫻井卯太郞의 세째딸을 처로 얻었다 했다.
의사 집안임을 엿본다.
植村俊二 약력은 다음과 같다.
1) 東京帝國大學 醫學部 졸업
2) 1904년 東京帝國大學 의학부 졸업
1917년 박사학위 취득
3) 1904년 12월 東京帝國大學 醫科大學 졸업
1909년 6월 東京帝國大學 大學院에서 수학
경력 및 활동을 보면
1) 1904, 1905년 러일전쟁에 즈음하여 軍醫로서 熊本, 廣島, 滿洲의 陸軍病院에 근무.
1909년 軍籍에서 물러나 東京帝國大學 大學院에 입학함.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1912년 6월 朝鮮總督府醫官으로 임용되어 조선에 건너옴.
1913년 朝鮮總督府醫院 外科長이 되고, 논문을 제출하여 1917년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함.
1922년 勅任醫官으로 승진하여 1924년 退官함.
동년 7월부터 현재지에서 植村外科病院을 개설하고 스스로 원장이 되어 오늘에 이름.
그 사이 外科學 연구를 위해 구미 여러 나라에 유학함
2) 러일전쟁 때 廣島, 熊本, 滿洲 각지에 근무하면서 우수한 기술을 발휘함
1912년 6월 조선총독부의원 醫官
1913년 조선총독부의원 외과장으로 승진
1915년 外遊
1917년 博士學位 취득
1924년 현주소에 의원 개설
京城愛知縣人會 회장 역임
3) 학교 졸업 후 陸軍衛生部에 들어감
1911년 8월 東京第一衛戍病院으로 전보됨
1912년 6월 朝鮮駐箚軍司令部로 배속되어 조선으로 건너옴
1913년 6월 朝鮮總督府醫院 醫官에 임명됨과 동시에 陸軍 3等軍醫正으로 진급
1915년 5월 歐米로 출장, 1916년 12월 귀국
從6位 勳5等
일제시대의 의학박사: 백인제와 장기려의 경우
일제시대의 의학박사: 백인제와 장기려의 경우
백인제 선생과 장기려 선생의 프로필은 다음과 같다. 백인제: 오산학교 졸업 (1915)-- 경성의전 (1916-1921)-- 조선총독부의원 근무 (1921-1923)-- 경성의전 외과학교실 교수 (1927-1941)-- 동경제대 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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