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낼 사람이 없는 북방 사민, 중앙에서는 인원 할당만!

필자가 장황하게 향촌 중인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은
우리나라 조선전기의 북방사민 때
보낼 사람이 없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였다.
앞에서 우리나라 호적은 열명 중에 한두 명이 간신히 기재되고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써놨지만,
실제로 우리나라 호적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어서,
호적을 한 번 보면 대략 도대체 누구를 뽑아 사민에 보낼 것인가
관의 입장에서는 고민이 없 을리가 없겠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양반의 아래에는 노비가 다수 속해 있었고,
양반이건 노비건 간에 북방 사민을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라.
결국 사민의 대상은 관에 속한 노비이거나,
아니면 농사 짓는 평민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인즉,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평민 역시 귀중한 세금 부담자로서,
이들을 보내버리면 우리 동네에 세금 낼 사람이 없다는 것이 문제가 되겠다.
따라서 북방사민이라고 우리는 쉽게 이야기하지만,
도대체 누구를 보낼 것인지에 이르면,
생각보다 이를 추려 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은 쉽게 알 수 있다.
우리는 호적이 매우 부실하여 호적에 올라있지도 않은 사람이 많으니
그들을 잡아다 보냈겠지, 쉽게 생각들 하지만,
필자가 앞에서 썼듯이 조선시대 호적에 빠진 사람들은 행정망이 부실하여 누락된 것이 아니라,
저마다 이유가 있어 누락된 것이니 그냥 잡아다 보낼 수도 없는 그런 상황이었음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 북방에 사민을 해야 한다. 사람을 남쪽에서 북쪽으로 실어 보내자고 결정한 중앙정부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어떻게 사민할 사람을 추릴 것인가 하는 점은 별로 고민하지 않는다.
이것은 세종 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영조 대의 균역법 때도 마찬가지로서,
균역법은 원래 백성들에게 2필인 군포를 1필로 감하는대신,
그 손실분을 "선무군관"이라는 직제를 신설하여
그 동안 군포를 내지 않던 이들을 여기다 몰아 넣고,
백성들이 안내게 된 군포 1필을 이들더러 내라고 하고는,
대신에 "군관"이라는 이름을 주고, 이들을 모아 따로 과거도 봐서 벼슬도 주겠다는
애들 사탕 주는 것 같은 사탕발림으로 국고 손실분을 메꾸는 것으로,
그럼 누가 "선무군관"을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여전히 남게 되었다.
선무군관은 오늘날 "부유한 평민" 중에서 뽑았다고 이야기하는데,
이 기술은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부유하건 뭐건 간에 평민이라면 당연히 군포를 2필씩 내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에게 선무군관 군포 1필을 부과한다는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선무군관들은 백프로 원래 군포를 납부하지 않던 이들로,
양반들이 이들을 뭐라고 부르건 간에 자신들은 스스로를 "양반"이라고 생각한 사람들로,
관에서도 이들에게는 균역법 이전에 군포를 전혀 부과하지 않던 사람들이다.
조선시대는 군포를 부과하지 않으면,
이는 곧 관에서 그를 양반으로 본다는 소리와 같았으니,
당사자 입장에서는 청금록에 들어가느냐 아니냐의 문제보다
내가 군포를 내느냐 아니냐가 양반이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더 중요한 문제였다.
그런데 균역법 시행 당시, 이 균역법의 성패를 결정할 "선무군관"의 문제
도대체 누가 그러면 선무군관을 해서 그전까지 안내던 군포를 새로 낼 것인가,
이 문제는 어떤 원칙도 없이 중앙정부는 지방에게 도별로 TO만 할당한 것이다.
실로 지방관과 향리들로서는 골치 아픈 일을 떠맡은 셈인데,
바로 이러한 균역법 시행하의 선무군관 선발 문제가
조선전기 북방사민을 추려내는 것과 매우 비슷 했을 것이니,
이때도 백프로 도별 TO만 정해서 아래에 언제까지 사민할 사람을 뽑아 보내라고 오더가 내려왔을 것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