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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김천학 콜로키움, 아동문학가 사슴 윤사섭을 조명하다

세상의 모든 역사 2026. 7. 27.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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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문학가 사슴 윤사섭(1930~2006)

 
[보도자료] 김천학 콜로키움, 아동문학가 사슴 윤사섭을 조명하다

김천의 역사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그 확산을 표방하는 연구 모임 김천학 콜로키엄(회장 김창겸, 김천대 교수)은 23일 오후 서울 삼성동 하이브로빌딩에서 제36차 월례 발표회를 갖고 김천 출신 아동문학가 사슴 윤사섭(尹史燮, 1930~2006)의 생애와 문학 세계를 집중 조명하는 자리를 가졌다. 

이 콜로키엄은 김천학의 확립과 그 전국적 공유를 위해 매월 한 차례씩 관련 분야 전문가를 초빙한 가운데 김천과 서울을 오가며 개최하며, "김천도 잘 모르는 김천 이야기"를 발굴하고자 하는 민간 학술 사업이다. 

이날 콜로키엄에서는 한국 근현대 문학사가인 선동재 박사(서울교대 강사)가 연사로 나서 어쩌면 술을 좋아했지만, 순박한 옆집 아저씨 정도로만 김천에서 기억하는 윤사섭이 한국현대문학사에서는 특히 동화 분야에 주력하면서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현하려 한 중견 작가라는 사실을 밝히는 데 주력했다.




선 박사에 따르면 김천 출신인 윤사섭은 말년을 제외하고선 고향 김천을 떠난 적이 없는 지역 작가다.

출생 직후 한 쪽 눈을 실명했고, 또 해방 직전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집안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장남으로 불과 열다섯살에 철도국 김천분소에 들어가서는 16년을 일하다가 5.16 군사혁명 직후에는 군미필자라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쫓겨나고 만다.

철도국 일이 그의 천성에는 맞지 않았으나, 이미 십대 때인 식민지시대 말기에 주로 일본 아동문학을 집중 섭취하면서 문학가의 꿈과 창작열을 불태웠으며, 1955년에는 김천 상주 지역 문인들과 흑맥문화회라는 단체를 조직하고 동인지 《문학령》을 발행하기도 했다. 1957년에는 대구아동문학과 회원으로 활동하기도 한다.




그가 작가로 본격 알려지게 되고, 창작열이 가장 활발하게 터진 시점은 저 해직 사건 무렵이라고 한다. 이때 받은 퇴직금으로 《전봇대가 본 별들》이라는 창작 동화집을 자비 비매품으로 500부를 출간했으니, 그 스스로는 이 일을 "나는 그때의 통쾌감을 평생토록 잊지 못한다"고 했고, "아마도 해방 후 경북에서 창작동화집으로서는 처음인 아닌가 하"는 이 동화집을 냄으로써 "그동안의 사회의 빚을 청산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선 박사에 따르면 이 첫 작품집을 필두로 1960년대가 윤사섭 문학의 황금기가 된다. 1965년 한 해에는 창작 동화집을 세 종이나 내기도 한다. 




그는 이런 그의 문학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키워드로 김천이라는 배경, 6.25 전쟁 직후의 참화라는 시대 배경을 제시하면서, 주로 5페이지 안팎의 아주 짧은 그의 동화들은 "인간성에 대한 믿음, 휴머니즘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선 박사에 따르면 윤사섭에게 동화는 "아동들에게 '바르게 살아가는 길'을 가르치기 위한 수단"이고 이를 어떻게 "아동들에게 이해"시킬까에 초점을 둔다.

그가 내세운 휴머니즘은 간단히 말하면 '가족애'이며, 이는 6.25 전쟁으로 전쟁 고아가 무수하게 양산된 시대 배경과 결코 무관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희망을 잃은 그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했다는 것이다. 

선 박사는 말한다.

"윤사섭은 전쟁 이후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많은 어린아이들을 염두에 둔 '돌봄의 아동문학', '돌봄의 동화'를 꿈꾸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작품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어린이들을 친절하게 대하고 그들에게 유익을 주려는 어른들이 등장한다."   
 
보도자료 문의 김창겸 010-2944-8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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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저 콜로키엄 보도자료를 하나 만들어 달라는 김창겸 회장 요청에 작성한 것으로, 최종 언론 배포본은 아마 김 회장이 손을 댔을 것이니, 나는 그 최종본을 보지 못했다. 

덧붙이건대 저 윤사섭 선생님은 내가 김천고 다니던 시절엔 교편은 잡지 않았다고 기억하며, 도서관 사서셨거니와, 그럼에도 선배님들 말씀을 들으면 미술 수업도 담당하셨댄다.

그때야 저 분이 저명한 아동문학가인 줄은 꿈에도 몰랐고, 조용한 양반이셨고, 골초셨다는 기억과 술을 좋아하셨다는 기억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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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친구 정천화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아몰랑

윤사섭 선생님은 한문과 국어를 가르쳤던 것같다. 또 시험칠 때는 감독하시지 않았다. 학생들의 양심에 맡기고 무감독 시험을 치렀던 기억이 있다. 태식이 반과 내 반이 달라서 그랬던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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