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방사민 (2) 지방에서 결정했을 차출

우리나라 북방사민은 매우 성공적인 정책이다.
세종 대 이후 본격화한 북방사민은 그리로 옮겨가야 하는 이들의 많은 저항이 있었지만
이 정책처럼 장기간에 걸쳐 꾸준히 시행된 것도 없다.
이 정책에 조선 정부가 얼마나 사활을 걸었는가 하면,
중종대에 평안도 지역에 대규모 전염병이 발생하여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죽은 때가 있었다.
죽은 이가 수십만이었고,
그 전염병이 우리나라 서북지역을 강타하여 평안도는 그야말로 무주공산의 땅이 될 판이었는데,
이때도 그 틈을 타고 여진족이 남하 할까봐 남쪽에서 사람들을 사민하자는 이야기가 계속 논의되었고,
실제로 사민을 했을 것이다.
북방영토라는 것이 그냥 공짜로 얻어진 것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피눈물이 만든 위대한 성취인데,
이 대단한 사업을 당시에도 많은 기록이 남기지 않았고
지금도 우리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 작업이 이루어졌는지 잘 모른다.
흔히들 범죄자를 북방에 사민했다고 하지만,
우리나라 "범죄자"의 꼴을 잘 모르고들 하는 소리다.
조선시대에는 옥에 한번 가두어 버리면
옥중 환경이 너무 안좋아 아무 형벌을 내리지 않아도
옥에 있다가 병에 걸려 죽는 이들이 부지기수인 판이었다.
이런 사람들만 데려다가 북방을 채운다?
그 사람들이 그 땅에서 얌전히 농사 지으며 살았을 리도 없고,
범죄자로만 채워놓은 땅을 어떻게 군현으로 편제하겠는가.
범죄자로만 채워 놓으면 거기에 건실한 농민이 누가 순순히 이주하겠는가.
그건 정부에서 아이디어의 하나로 내 놓은데 불과하고.
실제로는 정부에서는 "백성을 옮기라"는 오더가 나가고,
실제 업무는 호적을 쥔 향촌 레벨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다.
쉽게 말해 누구를 차출해 올려보낼 것인가는,
호적을 쥐고 있는 향촌 레벨의 전결사항이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이것은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닌 것이,
하긴 해야 하는데 대책도 없을 때는 조선시대 항상 위쪽에서는 티오만 정해 내려보냈다.
우리나라 균역법?
이 균역법의 성공에는 선무군관의 차출이 필수적이었는데,
정부에서는 당시 각 도별로 선무군관 숫자만 정해 내려보냈다.
나머지는 협박을 하건, 설득을 하건 호적을 쥔 현장의 전결 사항이라 할 것이다.
정부 입장에서는 원하는 선무군관 숫자만 확보되면 되는 것이니,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는 전혀 치지도외였다 할 수 있다.
우리나라 기록에 북방사민의 기록이 매우 부실한 것은,
실제로 범죄자만 올려 보냈기 때문에 부실한 것이 아니다.
보나마나 각 도별로 필요한 숫자를 할당하여 모년 모월까지 다 이동시키라 했을 것인 바,
그 차출 작업은 호적을 쥔 향촌 전결사항이라
중앙에서 그 차출 방식은 제대로 몰랐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