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사또 재판의 시말 (2) 언제 주리를 트는가?

초야잠필 2024. 10. 24.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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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우리는 조선시대 재판에는 고문이 일상적이었다 생각한다. 

물론 이것이 꼭 틀리다고는 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초검과 재검까지는 딱 잡아 떼던 피의자가 삼검 때 갑자기 다 자백한 걸로 조선시대 보고서에 나오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는 필자가 보기엔 잡아다 팬 것이다. 

우리는 조선시대 재판관은 재판 중에 패는데 전혀 부담이 없었을 것 같지만, 

조선시대 검험을 담당한 관리가 반드시 숙지해야 하는 책이 바로 "무원록無寃錄"이다. 

원통함이 없도록 하자는게 책 제목인데

일단 잡아 놓고 패는 것-. 

물론 그 시대에 그리 할 수는 있겠지만

조선시대도 역시 내가 사람을 패서 사건을 해결했다고 사또가 자랑스레 말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조선시대에 관련자를 취조하는 상황을 보면, 대개 사또가 사건을 정확히 숙지하고 있어서, 

너는 이렇게 이렇게 이야기 했는데 앞뒤가 안 맞지 않냐. 

제대로 불어라 할 때 이 타이밍에서 이실직고以實直告 하라는 말이 나온다. 

다짜고짜 저놈이 의심스러운데 해서 잡아다 놓고 패면서 이실직고 하라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조선시대에는 반드시 세 가지 사항이 일치해야 사건이 종결되었다. 

첫째는 관련자 증언, 

둘째는 검시 결과, 

셋째는 무원록에 기술된 내용과의 일치 여부 

이 셋이 딱 맞아 떨어져야 사건이 종결되는 것이고 

이것이 하나라도 엇나가면 상부에서 자꾸 재검 지시가 내려온다. 

따라서 조선시대 재판에서 사람을 잡아다 놓고 패는 건

대개 이 타이밍에서 나왔을 것이라는게 필자의 생각이다. 

검시결과는 이러이러하고 이것이 무원록을 참고하면 

딱 사람을 팬 자국이 틀림없는데, 

정작 죽은 사람 몸에 이 상처를 만들어 놓은 것 같은 놈이 딱 잡아떼는 것이다. 

요즘이라면 증거를 들이대고 재판에서 유죄 선고를 내기를 기도하겠지만, 

조선 사또들은 바로 이 타이밍에서 그 사람을 팼으리라 생각한다. 

다시 말해 증언, 검시결과, 무원록의 기술

이 세 가지를 일치시켜 사건을 종결시키려다 보니 사람을 패게 된다는 말이다. 

조선시대 사또들이 피의자를 패는 장면은 바로 여기서 나오는 것이지, 
다짜고짜 의심스러운 사람을 일단 잡아 놓고 패고 본다? 

그런 건 아무리 조선시대라도

그렇게 사건을 해결하면 잘 했다는 소리 듣기는 글렀다는 말이다.  

그렇게 보면

우리나라 사법 수사가 고문을 완전히 추방한것 이 90년대나 넘어서였지 않나 싶은데, 

조선시대 재판 수준을 뛰어 넘은 건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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