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이야기

사림파 영감님이 앉아 설명하는 조선왕조 오백년사

신동훈 識 2026. 5. 4.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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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지고 보면 우리나라 조선시대 역사의 기술은 

사림파 영감님 한 분이 앉아 자기 생각나는 대로 조선시대 사를 설명하는 것과 비슷하다 하겠다.  

예를 들어 보자. 

조선전기에는 성리학에 대한 이해가 수준이 낮고, 

조선혁명에 추동한 이들이 유교의 의리에 대한 배신이라, 

왕조 교체기에 절개를 지켜 낙향한 길재의 도통을 이어.. 어쩌고 저쩌고, 

이런 시각으로 조선전기를 설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종 이후 사림파 대두를 역사의 필연으로 설명한다. 

이건 전적으로 사림의 시각이라 정말 그렇게 된 것인지는 한 번 냉정히 따져볼 필요가 있겠다. 

사림에서 추앙하여 문묘종사를 한 이들을 포함한 길재로부터 이어지는 도통에 대한 설명도, 

사실 사림의 시각으로 자기들 선생을 추앙하여 문묘에 꽂아 넣자고 추앙한 것이지, 

이 양반들이 정말 그렇게 문묘에 들어갈 정도로 대단한 양반들이었는지 뭔지는 솔직히 의심스럽다. 

그리고 16-17세기 사림의 시대를 설명하다가 18세기가 되면 이번에는, 

자기들을 치고 올라오는 "모칭유학들"을 자기들 생각대로 폄하하면서 읊조리는 것이다, 

이 놈들은 사실 공부할 생각도 없는 이들로 향교에 모여 군역이나 빠질려고 하는 놈들인데.. 

제대로 된 양반은 청금록이나 향안에 이름을 올려야지 저런 놈들은 양반도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림파는 사실 역사의 주인공이었던 시기는 16-17세기를 중심으로 앞뒤 길어봐야 이백여년 정도인데, 

앞으로 백여년 뒤로 백여년을 지들 맘대로 자기 시각대로 떠든 것을 받아 우리 역사에도 그대로 받아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사림파의 훈구파에 대한 시각은 정말 맞는 것인가? 

문묘에 종사된 동방 오현-. 

퇴계야 그렇다고 쳐도 정말 나머지 그 위로 네 명은 문묘에 종사될 정도의 대단한 사람들인가? 

사림들 자신들의 스승의 스승의 스승이라고 문묘에 꽂아 넣은 것이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필자는 그렇게 생각한다. 

역사야말로 당연한 것을 죄다 의심해봐야 한다고. 

특히 사림과 훈구파에 대한 시각도 마찬가지인데,

이제는 사림의 일방적인 시각을 벗어나 그 반대편에서도 사림의 대두라는 이 역사적 사건을 바라볼 때가 되었다 하겠다. 

 

곡부 공자묘 평면도. 1912년 현재라 한다. 위키피디아에서 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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