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신분을 보여주는 것은 오직 조선초기 족보
조선초기 족보와 중기 이후 족보는 다르다.
초기 족보 대표가 안동권씨 성화보와 문화유씨 가정보인데
이 족보와 조선 중후기 이후 족보 차이를 설명하면서
전자는 처가 그리고 사위집안까지 다 써 놓은 반면
후자는 가부장적 부계족보라는 식의 설명만 하는 것을 보는데
사실 정확히 이야기 하자면,
족보가 수록한 사람의 신분을 정확히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조선초기 족보로,
예를 들어 안동권씨 성화보와 문화유씨 가정보는
같은 수준의 사람들끼리 서로 통혼하여 그 혼맥을 끝까지 추적하며 관련된 사람들을 다 수록한 것으로
정작 그 족보를 보면 안동권씨, 문화유씨보다 다른 성씨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들 두 족보에 수록된 사람들은 당시 통혼이 가능한 수준에 있던 사람들로
이 족보에 수록된 사람들은 전부 그 당시 지배계층,
조선전기 5프로도 안 되었다는 당시 지배 양반계층 구성원이라 보아도 틀림없다.
이 족보에는 심지어 서자도 모두 빼버려서 여기 실린 사람들은 전부 적자로,
당시 중앙 정계를 중심으로 혼맥을 형성한 조선 전기 지배층을 대표하는 족보라 할 수 있다.
반면에 조선 중 후기 족보는
어느 명문 집안 족보에 실렸다고 해서 내가 명문집 후손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우선 그 족보에는 처음부터 동성 부계 집단 후손은 다 수록하고자 한지라,
아무리 한미하고 심지어는 서얼이라 해서 서자라고 족보에 박아 놓는 한이 있더라도
같은 조상에서 나왔다는 이는 모두 다 수록하는 족보였다.
따라서 조선 시대 중후기 족보는 거기 실렸다고 해서 자기가 그 집안이 누리던 양반집 후손이냐
전혀 그렇지 않다는 말이다.
그 안에는 정말 잘나가는 벌열 집안 후손부터 서자에 중인 향리에 심지어는 평민들까지 섞여 있어서
조선시대 중후기 족보는 사회적 신분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 하겠다.
그나마 이 중후기 족보가 사회적 신분으로도 어느 의미를 갖는 것은
최소한 그 시대 족보에 실리면 노비는 아니었다는 뜻은 되겠다.
노비는 족보에 실리지를 않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미 사회적 신분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로서의 가치를 지닌 조선초기 족보가
부계족보로 바뀌면서 사회적 신분을 뛰어 넘은 동성집단 잘난 사람부터 시원치 않은 사람까지 다 수록하게 되었고,
그것이 일제시대 들어오면서 아예 요즘으로 치자면 같은 동성이라는 연대의식을 가진 일종의 동호회 같은 것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
바로 20 세기 족보가 되겠다.
이 20 세기 족보를 들고 조상님과 뼈대 있는 가문을 말하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하는 일을 다시 한 번 써 둔다.
이건 어떤 사람 족보가 가짜라던가,
나중에 끼워 들어갔다던가 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조선 중후기 부계 족보 자체의 성격이
아무리 제대로 기술했더라도 본질상 사회적 신분을 보여줄 수 없는 족보라는 뜻이다.
조선시대 중-후기 족보가 되면,
청보, 탁보 논의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그 안에는 각종 사회계층 사람이 다 들어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