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동山东 일조日照 태장자大庄子 한묘汉墓
태장자묘大庄子墓는 산동성 일조시日照市 람산구岚山区 호산진虎山镇 태장자신촌大庄子新村 동쪽 대지, 아액산阿掖山 북쪽 기슭, 황해에서 동쪽으로 약 3.5km 떨어진 곳에 위치하는 현급县级 문물 보호 단위다.
묘지墓地 표면에는 원래 두 개 봉토가 있었는데, 그 중 첫 번째 봉토는 남북 길이 50m, 동서 너비 40m로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으며, 그 아래에 10개 이상 묘장墓葬이 있다.
2호 봉토는 초기 생산으로 파괴되어 현재 기본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일조시 과시가원구科施佳园区[공원] 확장 공사에 즈음해 2023년 12월부터 2024년 1월까지 산동성 수중 고고연구중심山东省水下考古研究中心에서는 일조시문물고고연구소와 합동으로 2호 봉토 아래 묘지를 탐사하고 발굴했다.
이번에 발굴한 무덤은 모두 3기로 모두 수직으로 땅을 파고 들어가 묘광을 만들고 그 안에 목곽을 안치하고 두 사람을 합장한 이른바 수혈토갱목곽竖穴土坑木椁 2인 합장묘[双人合葬墓]이면서, 모두 통로인 묘도墓道가 있다.
무덤 3기 중 2기는 도굴이 심하지만, 묘 구조가 명확하다. 나머지 1기는 잘 보존되어 있으며, 각종 부장품 70여 점이 출토되었다.
조사단에서는 이들 묘에다가 각각 M1, M2, M3라는 구별 번호를 붙였다. 바로 아래 사진을 보자.

1호 무덤[M1]
묘광墓圹은 길이 4.2, 폭 3.5, 현재 깊이 2m인 평면 칼자루 모양[刀把形]다. 매장 시설[葬具]은 2관1곽两棺一椁이다.
목관 2구는 모두 통나무를 파서 만든 독목관独木棺으로 관 안에 있어야 할 인골은 이미 썩어 없어졌다.
도굴한 상태이며 껴묻거리는 칠목준漆木樽, 귀잔耳杯 , 유약 바른 도기호釉陶壶 각 1점이다.
첨부사진은 보이지 않는다.
2호 무덤[M2]
M1에서 남동쪽으로 10m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평면이 대체로 '甲'자형이고 경사가 있는 묘도[斜坡式墓道]를 갖추었으니 그 잔존 길이 4.45m다.
묘광은 길이 4.4, 폭 3.95, 남은 높이 2.76m다. 개중 동쪽 벽은 굽은 이른바 호형弧状이지만, 무덤을 만들 때 무너져서 생긴 현상으로 의심된다.



매장 시설[葬具]는 1곽2관一椁双棺이다. 목곽木槨은 평면이 '亞'자 모양이고, 그 천장은 5장 널빤지로 가로 놓았으며, 목곽 둘레에는 청고니靑膏泥로 채웠다.
이 무덤도 도굴되어 관 안 인골은 남아 있지 않으며, 남은 부장품으로는 유약 바른 도기 항아리[釉陶壶]와 남은 칠안漆案 등이 있다.
서쪽 관에는 동인銅印과 동대고리銅帶钩, 철검鐵劍 등이, 동쪽 관에는 칠방합漆方盒과 경쇄镜刷, 죽발비녀竹发簪 등의 부장품이 남아있다.
출토된 인장과 인문印文을 통해 무덤 주인은 '환가桓贾'임을 알 수 있다.
3호 무덤[M3]
M1에서 동쪽으로 약 15m 떨어진 곳에 있으며 잘 보존되었다.
묘광은 평면이 칼자루 모양[刀把形]이고 묘도墓道, 묘문墓门, 덧널방椁室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덧널 바닥으로 연결된 경사식 묘도는 잔존 길이 6.6m다.



묘광은 길이 6.4, 폭 4.1, 잔존 깊이 4m로 덧널실椁室 둘레에 청고니를 봉하여 물이 가득 찬 상태로 발견되었다.
덧널실에는 이중 덮개가 있고, 그 상층은 11개 각목이 가로로 배열되고, 하층은 세로 단층 목판이다.
덧널실은 동·서 2개 방으로 나뉜다. 두 방 사이에는 미축목 창호微缩木门窗를 사용하여 서로 통하게 하고, 한 문에 두 개 창이 있다.
머리칸[두상头箱]과 다리칸[각상脚箱] 영역은 모두 나무 판자로 분할한다.



서곽실 목관은 겉은 검은색이고 속은 붉은색이며 바닥은 두 개 가로 틀이 올려져 령笭[관 받침대]을 형성한다.
관 안 인골은 이미 다 썩었고 부장품은 동경과 철검 각 1점이며, 그리고 귀뉴동인龟钮铜印 1점이 있어 그 인문印文은 '환보덕인桓报德印'이다.
그 머리 상자[头箱]에는 대, 중, 소 칠이배漆耳杯가 무더기로 놓여 있고, 발 상자[脚箱]에는 14개 유약 도기[釉陶器]가 놓여 있으니, 그릇 모양에는 호壶, 부瓿, 긴 목 병[长颈瓶]이 있으며 대부분 목질 뚜껑[木质器盖]이 있다. [나무마개로 막았다는 뜻이다.]



동곽실 목관은 이미 무너져 내렸고, 관 안 인골은 멸실되었으며, 부장품으로는 옻칠함漆盒, 나무빗木梳 , 목산木箅, 구리거울 등이 있다.
그 관 밑은 관을 내릴 때 사용한 영구차[柩车]인데, 두 개 통나무 바퀴[圆木滚轮]가 달려 있다.

동곽실 머리칸[头箱]에는 옻칠한 둥근 합[漆圆盒], 귀컵[耳杯], 유약도기釉陶壶가 약간 부장되어 있다.

태장자 묘지에서 발굴된 3개 무덤 중 2개가 도난당했지만 무덤 구조가 비교적 명확하고 여전히 많은 귀중한 문물이 출토되어 최근 몇 년 동안 산둥성 동남해안 일대 한대 무덤에서 중요한 발견이다.
무덤 형태나 출토 부장품 등으로 보아 이 일대에서 이전에 발견된 서한 중·후기 무덤과 거의 같은 양상으로 보아 이 또한 서한 중·후기에 속한 것으로 보인다.
묘소 3기 중 2기가 인장이 출토되고, 그에서 같은 환씨 성을 가진 것으로 보아 이 묘소는 환씨桓氏 가문 묘소로 추정된다.
특히 잘 보존된 M3 무덤은 구조가 명확하고 두 관 사이에 문과 창문이 연결되어 있으며 무덤 구조가 명백한 택지화[地宅化] 현상이 있다는 점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
발굴 정황으로 미뤄 부부합장묘로 추정되나 동시 하관[下葬]은 아니고 묘도가 한쪽 묘실과 목문으로 치우쳐 막혀 있는 구조로 보아 2차 하장이 분명하다.
잘 다듬은 관곽 구조, 특히 하관할 때 쓴 수레가 발견된 일은 산동성 동남해안 일대 한대 매장 풍습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실물 자료를 제공한다.
많은 옻칠 목기와 유약을 바른 경질 도기를 매장하는 현상은 초나라와 월나라 문화 특성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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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5월에 작성해 놓고서 그만 비공개로 두었다가 망각했다가 우연히 발견하고서 뒤늦게 발행한다.
이 발굴에서 유념할 대목이 많지만 특히 무덤 안에서 발견되는 탈것은 덮어놓고 상여로 의심하라는 말 이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