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경제의 중심으로서의 관청

16, 17세기 우리나라 경제를 화려하게 수 놓은 선물경제-.
이 선물경제는 자급자족적 경제를 유지하는 개별 호구들이
모자라는 물건들을 폼나게 조달하는 방식으로
서로 선물의 형식을 취하되 실상을 보면 물물교환이라-.
이러한 물물교환의 체계가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것인데,
예를 들어 소를 한 마리 누가 잡았다, 하면
요즘 같이 냉장고가 있는 것도 아니고,
조선시대 일기 보면 허구한 날 설사한다는 이야기가 페이지마다 나오는 판이니
이처럼 설사가 많은 이유 중에는 당연히 상한 음식을 먹어서 그런 것이 가장 이유가 컷을 것이니,
소 한 마리를 잡으면 상하기 전에 먹어치워야 하니 선물 형식을 띠고
네트워크를 빠른 속도로 소고기들이 퍼져 나가곤 했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 번에는 그 소고기 댓가로 필수품이 그 퍼저나간 것과 반대방향으로 전달되었을 것이니,
소를 한 마리 잡아 주변에 뿌리면 그를 받아 소비한 사람들이 필수품으로 갚으니,
소를 잡은 집은 한 번 거사를 치르고 나면 자기가 먹을 소고기와 다른 필수품이 집안에 쌓였을 거임에 틀림없다.
문제는 이렇게 좁은 영역의 네트워크만 있었겠는가 하는 점이다.
일기를 보면 심상찮은 부분이 있는데,
관청과 사족들이 세금도 아니고, 정체불명의 물자 교환을 하는 장면이 많이 잡힌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사족이 군수, 혹은 목사에게 무슨무슨 물건 없냐, 좀 달라고 하면
목사는 그에게 물건을 보내준다.
그리고 한참을 지나 보면, 받은 쪽 사족이 도대체 뭔 명목인지 알 수도 없는 이유로,
다른 물건을 관청에 가져다 주라고 하는 것이다.
관청은 이를 또 넙죽 받아 놓는다.
아마 관청의 장부에는 어떤 물건이 나가고, 대신 다른 물건이 들어온 것으로 기재가 될 것이다.
이런 관청이 보유한 물품이 사족들과 물물교환을 하고 있는 정황이 잡히는데,
이것이 과연 당시 합법적이었는가 뭔가 하는 것은 모르겠다.
다만 관청에서 쌓아 놓은 물품이라는 것이 결국 대부분이 공납품일 것이라는 점,
그리고 공납품은 원거리 이동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그 고을에서 생산되지 않는 물품 상당수는 아마도 공납품으로 받아 원거리 이동한 물품을
관청을 통해 선물교환의 형식으로 사족들에게 전달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대표적인 물품이 혹 내륙지역의 소금과 어물이 아닐까 싶은데,
아직은 심증 단계에 그치고 있지만, 좀 더 천착해 볼 생각이다.
*** [편집자주] ***
조선시대 없는 시장은 누군가는, 어딘가는 했어야 하는데, 그곳이 바로 관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