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레 그럴 것이라는 믿음 몇 가지

한국사에 대한 선입견이 있다. 써 보면-.
호적은 으레 엉망진창일 것이라는 선입견.
맞긴 맞다. 그런데 그 엉망진창의 원인이 무관심과 방기가 아니라
치열한 머리 싸움의 결과라는 것이 다를 뿐.
조선시대 호적은 삼정의 문란이라 하면 아무도 신경 안 쓰는 엉터리 장부라는 느낌을 주지만,
사실은 모든 사람이 신경을 쓰는 잔머리가 난무하던 종합격투기장이었다는 표현이 더 맞다.
이건 족보도 마찬가지다.
족보에 엉터리가 많다고 하니 부실 족보를 연상하지만
족보 역시 수백 년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그 역시 치열한 잔머리와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 난무하던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다음으로 조선시대 공부에 대한 관심은 사족층이나 그랬을 거라는 생각.
맞긴 맞다. 책 구경이라도 제대로 한 건 당연히 사족층.
전 인민 다수를 차지한 평민과 노비는 당연히 글이고 나발이고 하루 벌어 먹고 살기도 바빴을 터.
그런데 문제는 조선사회가 사족으로 유지하려면 배워야 하는 사회였다는 게 문제.
19세기에 신분질서가 무너지면서 조선땅 모든 이가 나도 배운 사람이라는 코스프레를 시작했고,
그래서 나온 결과가 자각한 "시민"이 아니라 나도 배운 놈이라는 "유학幼學"이 되어 버렸다.
사실 이건 20세기 초 한국을 강점한 일본이 가장 착각한 부분의 하나인데,
한국인들의 "못 배운 한" 내지는 "교육에 대한 열망"을 쉽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한국인들이 배워야 한다는 욕구는 일본인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다.
자그마치 천년을 과거제를 유지한 나라에서 배운 놈 아니면 사족이고 나발이고 되지도 않는 나라에서,
배우지 않으면 출세는 못한다는 것을 천년간 목격한 사람들이
집 팔고 소 팔아서라도 아들을 공부시키겠다는 욕망은 그래서 나온 것 아니겠나.
간혹 한국의 교육열이 일제시대나 되어야 시작되었다고 보는 이들도 있는 것 같아
천만의 말씀이라는 이야기를 적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