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적, 족보, 일기 이야기 (역사인구학)

추정 중종 시신을 두고 대판 붙은 성혼과 유성룡

日莫途遠 2026. 8. 9. 20:47
반응형

이런 상태로 시신이 출현하면 누군지 알아보겠는가?


임진왜란 때 정릉에 모셔둔 중종의 릉이 도굴 당하는 참변이 있었다. 

이때 상황을 왕조실록과 잡록등을 보면 서술이 자세하여 당시 상황을 잘 알 수 있다. 

당시 선릉과 정릉, 두 릉이 함께 왜적에 의해 도굴당했는데, 

문제는 정릉의 묘광 안에서 왠 사람의 시신이 발견된 것이다. 

당시 중종은 이미 승하한지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난지라, 

이 시신이 과연 누구의 시신이냐를 가지고 당시 조정에서는 격론이 있었다. 

이 논란의 중심에 선 사람이 바로 우계 성혼과 서애 유성룡으로 

이 두 양반은 원래부터 서로 마음이 잘 안 맞았다는데 

이 문제를 두고도 대판 붙어 

우계는 이 시신은 중종의 시신이 아니라는 쪽에 베팅하고, 

서애는 이거 어째 께름찍하다는 쪽에 비중을 두어 그의 잡록에 그리 서술하였다. 

결국 이 시신은 중종의 시신일 리 없다는 쪽으로 정리되어 

무덤앞에 있던 재를 왜적이 중종의 시신을 태운 재로 하여 새로 매장하여 모시고, 

이때 나온 시신은 주변에 따로 매장하여 치워 버렸다고 한다. 

당시 "이 시신을 그래도 예의를 갖추어 장례해야 하지 않느냐"라는 의견에

"그렇게 했다가는 오히려 이 시신이 중종일 수 있다는 의심만 더하니 그럴 필요 없다"고 결의되었다는 것을 보면, 

아마도 대충 매장하고 치워버린 것이 아닌가 한다. 

아주 재미있는 것은 당시 서애가, 

우계 때문에 이 시신에 대해 제대로 검증 없이 중종의 시신이 아니라고 결판 난 것이라는 취지의 글을 남겼는데, 

이를 대개는 우계와 서애 사이에 해묵은 감정 때문에 그리 적었다고 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런데 말이다-. 

서애의 글을 보면 이 사건에 대해서 아주 아주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그 부분에 대해 지금 논문을 쓰고 있다. 

이 논문은 금명간 학술지에 투고할 예정이다.

기대해 주기 바란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