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에 올라탄 안창남 (1923년)
생택쥐페리가 비행기를 몰고 대서양을 가로지르며
유럽과 남미를 횡단하던 1920년대-.
조선에도 비행기를 조종하는 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 조종사들 중에 안창남은 가장 빨리 조종면허를 획득한 사람들 중 하나로
1923년에는 "안창남군 고국방문 비행후원회"까지 조성되었다.
회비는 통상회원은 2원 이상, 특별회원은 10원 이상, 명예회원은 50원 이상으로
만만치 않은 비용이었지만
동아일보에는 지속적으로 후원회 광고가 계속 실렸다.
1920년대는
식민지로 전락한 조선에서
불리한 조건 하에서도
세계사 흐름을 엶심히 쫒아간 젊은 이들이 나오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안창남의 프로필을 보면,
휘문고보를 다니다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 자동차 학교에서 2개월간 자동차 운전을 배우고
아카바네 비행제작소에서 비행기 제조법을 익혔으며
오쿠리 비행학교에 진학하여
6개월간 비행기술수업을 이수하였다 라고 되어 있는데,
이미 1920년대 경성에 생긴 "자동차 학교"는 일본의 동경, 오사카, 쿄토 등에도 지점을 가진 학원으로
비행기 교습도 한다고 광고를 하고 있던 것을 보여드린 바 있다.
안창남 역시 같은 방식으로 비행기 조종을 습득한 것이 아닌가 한다.
예컨대, 당시 조종사가 되는 방법은
자동차 학원을 통해 비행학교로 진학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 아니었을까.
안창남은 프로필에서 "하늘을 나는 독립투사" 등의 수식어가 붙는 경우가 많은데,
당시 조종사가 된 안창남은
굳이 독립운동을 했다는 수식을 붙이지 않더라도
당시 조선인으로 세계사의 흐름을 열심히 쫒아가고 있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찬탄을 받을 만 한 분이었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