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노년의 연구

쇄미록이 전하는 나라 꼬라지

신동훈 識 2025. 7. 1.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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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이 미증유의 환란이란 점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쇄미록에 나타난 모습을 보면 왜란이 아니라도 별로 달랐을 것 같지도 않은 것이 나라의 꼴이니

우선 환자로 받아오는 곡식-. 

주는 쪽 됫박 따로 

받는 쪽 됫박 따로다. 

이건 왜란 때문이 아니고 원래부터 이 모양이었던 것 같은데

예를 들어 환자 곡식으로 다섯 말이라고 내주면

집에 와서 다시 달아보면 서말 밖에 안된다. 

나머지 두 말을 들고오던 노비 놈이 몰래 훔쳐 먹었나보다 하고 중간에 심부름하던 이를 탓한다. 

이런 기사가 한두 곳도 아니고 무수하게 많이 나온다. 

원래부터 관에서 환자곡식을 내줄 때 작은 됫박으로 내준 건지,

아니면 정말 중간에서 떼 먹은 것인지 

내가 들고 있는 됫박이 큰 건지 알 방법도 없다. 

됫박이 이 모양인데 토지는 제대로 쟀겠나. 

조선시대 임야라고 그려놓은 지도를 보면

산송이 많을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딱 든다. 

산송하면 꼭 투장만 생각들 하는데 

자세히 들어보면 그렇지도 않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내 산인지가 불분명한데

당시 조선 나라 꼴이 그런 것이 임란 때문이라고 하는 건 

조선이 망한 건 몽땅 외세 탓이라고 바깥에 뒤집어 씌우는 것과 똑같다. 
 

 
 
*** 편집자 주 ***
 

그런 점에서 일본에 의한 근대적 측량에 의한 토지조사사업과 임야조사사업은 조선사 획기였다. 

왜?

내가 보유한 토지가 정확히 어디에서 어디까지인 줄도 모르고 무슨 통치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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