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께끼의 책 열성수교 (3) 군역에서 빠지기 위한 혈안

필자는 이런 와중에
군역에 빠지다가 그렇지 못하게 된 이들,
정부의 강경한 방침에 군역 면제에서 밀려날 위기에 처한
양반 끄트머리에 있던 이들
그리고 이미 향촌 중인의 위치에 떨어져버린 사람들이
이 책이 정말 필요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책에는 "귀천을 막론하고, 군역에서 빼주라"라는 말이
어떤 문중의 열성수교이건 간에 반복적으로 적혀 있기 때문이다.
이 열성수교라는 책은 비교적 단순한 구조로 되어 있다.
열성수교의 주인공이 되는 역사적 인물에 대한 역사 기록이 실려 있고,
그리고 이 인물을 찬양하고, 이처럼 훌륭한 인물의 후손은 "귀천을 막론하고 군역에서 빼주라"는
왕의 명을 받아 정부에서 발급한 교서의 카피가 여러벌 실려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의 내용은 거짓일까?
필자는 이 책에 실린 내용 자체는 거짓일 가능성이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이렇다.
첫째로 인용해 있는 내용이 고려사 등 정사의 열전 내용이거나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은 문중의 고문서의 내용이 실려 있는 점,
두 번째는 군역에서 빼 주라는 근거가 되는 문서가 다른 것도 아니고 왕의 이름이 걸린 교서라는 점이다.
아무리 간이 바깥에 나와있는 사람이라도 왕의 이름이 걸린 교서의 내용을 가지고 어떻게 사기를 치겠는가.
이 책이 처음 나온 시기는 늦어도 정조 연간이니
아직 왕조의 서슬이 만만치 않았던 때이기 때문이다.
없는 교서를 가지고 필사본도 아니고 목판으로 찍어 낸다?
왠만한 배짱으로는 불가능할 것이다.
특히 이처럼 지위고하, 귀천을 막론하고 이 집안 후손은 군역을 빼주라는 정부의 명령서는
열성수교에 실린 내용과 대동소이한
그 실물이 발견되어 학계에 보고된 바도 있어
이 책에 실린 내용 자체가 위조라고 보기란 어렵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왜 스스로의 손발을 묶을수도 있는 이런 내용의 교서를 발급한 것일까.
그 이유는 정부가 먼저 알아서 이런 성현의 후손은 편의를 봐주라고 명령 한 것이 아니고,
내가 명현의 후손인데 부당하게 군역에 들어가 있다고
그 당사자가 군역에서 빼달라고 관아에 먼저 요청하고
그 내용을 정부가 받아 그래 그렇다면 빼주라고 결정하여 내려 보낸 이야기만 모아 이 책을 꾸렸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필자가 보기엔 당초엔 아마도 논란의 여지가 있는 개별 사안에 대한 정부의 결정 서안이 아니었나 싶은데,
이를 한데 모아 목판으로 찍어내는 순간부터 그 성격이 일변하여
필요한 사람은 모두 이를 근거로 군역에 빼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또 그렇게 쓸 목적으로 열성수교라는 이름으로 책을 묶어 낸 것이 아닌가.
실제로 이 책에 보면, 귀천을 막론하고 빼주라는 이야기 외에도,
고강에 떨어졌더라도 군적에 편입하지 말라는 좀 더 구체적인 사례의 이야기도 보이니,
이는 향교의 고강에서 떨어져도 군적에 넣지 말라는 뜻으로,
결국 이처럼 향교의 고강을 통해 군역을 회피하던 이들을 새로 군적에 채워 넣던 시기-.
17-18세기의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증명해 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마도 고강에 떨어진 누군가가 관청에 항의하고
이를 받아 그래 얘는 군역에서 빼줘라 라고 결정해 내려왔던 글들을
열성수교라는 이름으로 묶어 낸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