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를 소풍으로 아는 자들, 진흥왕의 경우

진흥왕 순수비 나온 김에 더 웃기는 이야기 하나 더 하겠다.
진흥왕 순수비에는 진흥왕이 저런 산꼭대기에 행차할 때 왕을 수행한 신료들 명단이 있다. 왕을 따라 쫄쫄 따라다니는 이런 일을 저 순수비에서는 수가隨駕라 했다. 따를 수에다가 수레를 탄다는 뜻을 의미하는 가자를 써서 저리 말한 것이다.
저 수가 명단을 보면 대략 스무명 남짓하거니와, 이는 승려 집단과 중앙 고위관료, 그리고 하급 실무 관료 정도로 삼분하겠으니, 그 숫자 합쳐봐야 저 숫자에 지나지 않는다.
한데 저 심각성을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왕이 서울을 떠나 전국을 주유하는데 이것이 어찌 큰 일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정작 저 문제를 다루는 이른바 연구자 집단은 실로 안이하게 접근하니, 저 비문에만 매달려 누가 행차를 수가했느니 그들의 직책이 뭐니 하는 것만 따지고 앉았으니 이를 우물 안 개구리라고 한다.

왜인가?
첫째 왕이 도읍 지금의 경주를 떠나 지금의 북한산이며 황초령이니 마운령을 순수할 때는 적어도 몇 달은 걸렸을 노정이라 이때 그냥 서울을 비워놓고 중앙 조정을 순수하는 데로 그대로 옮겨갔겠는가?
천만에. 수도를 그리 비울 수는 없으니, 왕이 비운 사이 왕을 대리해서 수도 경비를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이를 감국監國이라 한다. 보통 감국은 태자가 하지만, 진흥왕의 경우 태자가 나이가 어려 이런 일을 할 수 없었으니, 훗날 고구려 원정을 문무왕이 떠날 때 김유신을 감국으로 삼은 것처럼, 당시 내외부 명망 있는 사람, 예컨대 상대등한테 이런 일을 맡겼을 것이다.
둘째 그 행차 규모다. 비문에 저리 적혔다고 진짜로 왕이 꼴랑 수행원 20명 거느리고 전국을 쏘다녔겠는가? 물론 왕이 그리하는 경우가 아주 가끔 있다. 전쟁 같은 비상시에 그렇다.
하지만 그런 행동이 얼마나 위험천만한지는 전선에 나간 아들 위로하겠다며 전방 시찰 나갔다가 수행원 몇 십 명만 데리고 귀경하던 중 매복한 신라 군에 사로잡혀 처참한 죽음을 맞이한 백제 성왕의 사례가 증명한다.
그런 평화시 행차가 어찌 수십 명으로 때우겠는가? 적어도 수 천 명이 왕을 수행했다. 무엇보다 비상시를 대비한 군대가 항상 수행해야 한다.
셋째, 진흥왕이 어떤 경로를 밟았는지 확실치 않지만 다른 사례를 볼 때 적어도 북한산으로 행차할 적에는 육로를 이용했을 것이어니와, 조령 정도를 넘어 충주를 거쳐 한강 수로를 따라내려가는 행로를 택하지 않을까 싶다.
이 행로를 지날 때마다 저 수천 명을 누가 먹여살렸으며 그네들이 싸대는 똥은 누가 처리했느냐 이거다. 왕이 지나는 주군현은 살림이 거덜났다. 1년 세금 왕창 때려 부어야 했으니, 그래서 왕이 지난 길에는 언제나 향후 몇 년간 세금을 면제한다는 훈령이 내려온다.
황초령과 마운령 행차를 기성 연구자입네 하는 자들이 추가령 지구대를 통과하는 육로를 제시한 경우를 본 듯한데, 암것도 모르는 아무말 대잔치에 지나지 않는다.
마운령 황초령을 갈 적에 모름지기 왕이 거쳐가는 길목이 지금의 강릉 속초 일대 동해안이다. 왜 이곳을 지나게 되는가? 이건 다른 챕터가 필요한 이야기가 되겠거니와, 암튼 해로를 이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 대충 생각해도 저와 같은 대목들을 생각해야 하지만, 이런 점들을 생각하는 놈을 나는 못 봤다. 물론 나 김태식을 제외하고선 말이다.
지들이 모르면 덮어 놓고 제사, 진흥왕 순수비의 기이함!
https://historylibrary.net/entry/sunsubi
지들이 모르면 덮어 놓고 제사, 진흥왕 순수비의 기이함!
고고학이건 역사학이건 나발이건 지들이 모르는 것을 만나면 이 족속은 주특기 혹은 본능이 제의祭儀 혹은 제사라, 모르는 유물 만나면 하는 말이 "제의 관련 기물로 추정된다" 하고 지들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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