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열이 찡가 넣고 경도가 읊은 추사 도망시悼亡詩, 과연 추사 작품인가?

해피엔딩으로 마감하기는 했지만 지독한 사랑, 애끓는 사랑, 그 끝간 데를 보여준 드라마 '경도를 기다리며]에서 주인공 이경도(박서준)가 그 애끓는 사랑 서지우(원지안)한테 읊어주는 시가 느닷없이 죽은지 100년이 훨씬 넘은 그 유명한 조선후기 금석학자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년 ~ 1856)를 소환하거니와
추사가 제주도 유배지에서 마누라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쓴 도망시悼亡詩가 그것이라
위선 그 시 원문과 옮김을 본다.
옮김은 내가 새로 손을 봤다.
那將月老訟冥司 어찌하면 커플신이 저승 향해 따져물어
來世夫妻易地爲 다음 생엔 나랑 그대 자리 바꿔 태어날까
我死君生千里外 나는 죽고 그대는 천 리 밖에 살아남아
使君知我此心悲 그대로 하여금 이 내 슬픔 알게 했으면
흔히 이 시를 해설하기를 추사가 제주 유배 시절에 서울인가? 떨어져 지내던 부인이 죽어 그 슬픔을 저런 시로써 노래했다 하거니와,
그래 보다시피, 아니 더 정확히는 한국 한시답지 않게 몹시도 애절하다.
물론 저런 시가 한국 한시에는 아주 없지는 아니해서 예컨대 추사 선배인 연암 박지원만 해도, 죽은 누님을 위해 노래한 시가 명편이라 할 만하다.
문제는 저 시가 과연 추사 작인가다.
저 시는 놀랍게도 추사가 남긴 산문 시 등을 긁어 모아 편집해서 1934년 10권 5책으로 확정해서 연활자본으로 간행한 그의 전집 완당전집阮堂全集에는 누락했다.
없단 말이다.
물론 저런 전집 편찬 과정에서 여러 이유로 탈락된 글이 후대에 보충되는 일은 흔하다.
한데 이상한 점은 저 완당전집을 한국고전번역원 전신인 민족문화추진회가 1980년대에 완역하면서 저 시를 찡가 넣었다는 사실이다.
저 시가 어떻게 국역본 완당전집, 것도 그 맨 꼬바리 제10권 중에서도 그 맨꼬바리에서 세 번째인가 작품으로 수록되게 되었는지는 내가 아는 한 아래 당시 경향신문 기자 조운찬의 글이 유일한 증언이다.
[천년벗과의 만남] 묻힐 뻔한 추사의 도망시
입력 2001.01.19 17:01 조운찬 논설위원
오늘 운찬 형을 직접 전화로 불러내어 저에 얽힌 이야기를 추가로 캐물었다.
"승님, 도대체 저 작품이 어찌해서 국역 완당전집에 들어갔소?"
형은 저 시는 전집과는 상관없이 식자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한 작품으로 암송되었다고 하며, 그것을 신호열 선생이 전집을 국역하면서 집어넣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형은 민추에 다니던 시절(그 학교 출신이다), 너무 많이 들었다고 기억했다.
문제는 저 국역집 어디에도 저 시 출처를 신호열이 언급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저 시를 완당집에 집어넣게 되었는지 신호열은 밝히지 않았다.
예컨대 추사 문중에서 전하던 것이라면, 그렇다는 말을 해주어야 하는데, 도대체 출처가 무엇인지 알 수도 없다.
혹 추사시라 해서 특정 문중. 혹은 특정 식자들 사이에서 암송으로 전하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런 이야기도 없다.
운찬 형 기억을 통해 그 희미한 편린을 짐작할 뿐이다.
형은 저 시가 꼭 추사시라는 근거는 없을지 모르지만, 제주 유배 시절 부인을 애틋하게 여긴 한글 편지 등도 있으니, 저런 시를 짓지 말라는 법은 없다고 한다.
나아가 나 역시 생각도 같지만, 형 역시 저런 시가 문집 전반하는 편집 방침과 맞지 않다 해서 빼어버렸을 수도 있다고 본댄다.
문제는 저 시 어디에서도 문집에서 누락될 만한 근거가 손톱 밑 때만큼도 없다는 점이다.
부인의 죽음을 애도한 글은 유학자 문집에서는 부지기로 발견되며, 저 시 역시 그 내용으로 보면 문집에서 누락될 만한 근거를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저 시 말이다. 내가 보기엔 어째 당말 송대에 유행하는 사詞 일종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한다.
딱 유우석 시풍을 닮았다.
추사 작품일까?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