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참을 폭로한 알렉스 헤일리와 가족사 vs. 자랑을 분식한 한국의 족보

필자가 생각하기에 가족사 (family history)와 계보학(genealogy)은 많이 다르다.
특히 한국에서 그렇다.
우리는 족보라는 것을 집집마다 있기에 그 집안 역사는 다 안다고 생각한다.
족보가 많은 것을 이야기해 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막상 족보를 들춰 보면 이것처럼 복잡한 텍스트는 없다.
인간의 욕망과 허영이 만든 허구가 진실과 반쯤 반죽되어 구워진 것이 한국의 족보다.
소위 "공식적인 기록"도 마찬가지다.
집안의 역사를 풍부하게 있다고 하는 집안조차 면밀히 살펴보면 과장과 분식투성이다.
우리나라의 족보라는 것이 집안의 이야기를 듣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얼마나 우리 집안이 대단한가를 이야기하기 위해 쓴 것이 대부분이므로,
그 안에서 가족사의 진솔한 이야기를 듣기란 쉽지 않다.
한국의 족보와 문중사에서 감동을 느끼기 어려운 이유다.

미국의 작가 알렉스 헤일리Alex Haley(1921~1992)는 우리의 시각에서 보면 이런 것도 가족사라고 할 수 있을까 할 만하다.
부계와 모계 모두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노예의 후손이며,
책에서는 아프리카 문명에 대한 프라이드가 넘쳐나지만 (이는 70년대 미국 흑인인권 운동 여파이기도 하다)
그런 프라이드 만큼 대조적인 것이 바로 미국으로 끌려 온 후 조상들의 비참함이다.
흑인 노예의 삶은 딱 우리나라 조선시대 노비다.
주인 뜻대로 사고 팔리고, 이때 가족들까지 나뉘어 팔리며,
주인과 노예 사이에 불법적인 자손이 많이 태어나지만 이들은 모두 주인의 노예가 되었다.
약소한 재산과 돈도 미국 흑인 노예는 가질 수 있었고
그 돈을 가지고 운 좋은 주인을 만나면 자신의 자유를 사서 스스로 해방될 수도 있었다는 점에서 볼 때
미국 흑인노예는 우리 노비보다는 훨씬 나은 상태였다고도 할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의 절반을 차지했던 노비들은 그런 선택지도 없었다.
많은 사람이 조선의 노비는 노예가 아니라는 말을 하는데
미국 흑인 노예와 비교해도 삶이 그다지 낫지 않다.
도대체 어딜 보고 한국의 노비가 노예가 아니라는 것인지 냉정하게 그리고 솔직히 되짚어 봐야 한다.
알렉스 헤일리의 가계를 보면 부계 모계 모두 그 노예주의 핏줄이 흘러들어온다.
부계 모계 양쪽 모두 여자 조상이 그 주인과 사이에 후손을 낳았고 그 후손이 알렉스 헤일리의 조상이 된 탓이다.
오늘날 미국 흑인 상당수의 유전적 분석에서 백인의 흔적이 나오는 것을 보면,
이런 일은 비일비재 했을 것이다.
알렉스 헤일리는 이런 모든 사실을 담담하게 기술한다.
그의 소설이 팩트가 있네 없네 픽션이네 아니네 말이 많지만,
대체로 사실이라는 데는 대부분 동의하는 바이고, 그런 면에서 본다면 작가의 솔직함과 용기는 아무리 칭찬해도 과하지 않다.
알렉스 헤일리의 소설은 모계와 부계, 각각 한 권씩의 책이 있는데
모계쪽이 그 유명한 "뿌리Roots",
그리고 부계쪽이 한국에는 좀 생소하지만 그대로 미니시리즈까지 만들어져 흥행한 "퀸Queen"이다.
알렉스 헤일리는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의 소설은 이제 이미 고전의 영역에 들어섰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주기적으로 다시 판이 찍힐 것이고, 영화화, 드라마화할 것인데,
그의 소설이 가지고 있는 힘은 솔직함이 가져다 주는 감동이다.
우리에게도 자랑스러운 조상을 찾기 위한 "보학"이 아니고,
"가족사"를 솔직히 찾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기 바란다.
한국에서 보학이란 파들어가면 파들어갈수록 자랑스러움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실망하는 부분이 많은 텍스트인데,
이를 가족사의 입장에서 진실만 파고 들어간다면, 비로소 과거의 진실을 만나고,
조상들과 부모,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새로운 통찰력을 얻게 된다는 점에서,
한국에서 제대로 된 가족사의 탐구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