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요이시대 농경민 이주의 의문
어제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고고학자분으로부터
야요이시대에 관련된 사실에 대한 지도를 받았다.
최근 거의 정설이 되었다는 야요이시대 극초기(조기) 인구이동에 대한 도설이다.
첫 단계는 진주 지역을 중심으로 한 한반도 남해안 일대 좁은 지역에서 일본열도로 이주민이 발생한다.
다음 단계는 보다 넓은 지역에서 일본으로 이주민이 발생하여
보다 풍부한 한국청동기문화가 이식된다.
여기서 관심의 대상은 벼농사를 가지고 건너갔다는 첫 번째 시기(유우스 1식)다.
이 시기에 일본에 처음 출현한 이주촌은 상당히 고도로 발달한 관개수로, 수전, 환호로 둘러싸인 촌락 등
완성형 도작 촌락이 처음부터 나오는 모양이다.
그러면 이러한 완성형 도작 촌락이 그 반대편 진주 일대에서 보이느냐.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관개수로, 수전, 환호 등 개개 문화 요소는 한반도에서 선행형이 확인된다고 해도
야요이시대 도작촌처럼 완성형 단계에 이른 고도의 도작 촌락이
지금까지는 확인이 안 된 모양인데
이 사실이 맞다면 가능성은 두 가지겠다.
첫째는 한국 남부지역에서 야요이 이주촌에 방불한 완성형의 도작 촌락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거나.
그게 아니라면, 한국에서 건너간 도작문화가 더 발전해서 완성형의 도작촌락까지 발전했는데
이주 초기의 미완성형 도작촌 흔적이 아직 확인이 안 되었거나.
어느 쪽이건 한국과 일본 양쪽 중 하나가 미싱링크를 가지고 있는 것만은 확실해 보이는데,
완성형 도작촌이 한국에서 완성되어 일본으로 건너갔는지,
그게 아니라면 이쪽에서 건너간 미완성의 도작촌이 저쪽에서 완숙하게 된 것인지.
매우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