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태종 자손 집안의 사정

앞에 쓴 글
조선 국성의 경우 왕의 자손 4대는 서자도 보호받아
그 자손이 금고되지 않았다는 이야기와 관련해서 좀 더 써 본다.
태종의 아들 중 한 분-.
이 집안도 태종의 자손 4대는 서자가 보호받아
그 자손이 금고되지 않았다.
그리고 5대째부터 서자는 비로소 금고되기 시작한다.
이 집안에서 태종의 4대째가 되었을 때
남성 자손은 모두 22분 있었다.
이 안에서 그 위로 3대 안에 서자 조상이 없는 경우는
딱 두 분 있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조선시대에 왕의 자손 4대는 서자 자손을 금고하지 않는 원칙이 있으니 이 남성 자손 22분은
모두 사족으로 독립하여 나갔지,
만약 일반 사족들처럼 서얼의 자손은 모두 금고를 시켰다면,
사족으로 독립하여 번성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은
22분 중에 딱 2분 있었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나머지 20분은 그 조상 3대 안에 서자가 끼어 있었기 때문이다.
서자의 후손은 모두 금고를 하면 이 원칙이 얼마나 파괴력이 강한 규정인지 알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예외를 4대 달아 놓은 것은 어마어마한 특혜가 된다.
바로 이것이 같은 5백년 왕조를 거쳤는데
개성왕씨의 경우는 공양왕 때 왕족 130명만 처단하면 거의 모든 왕씨 종족이 사라지는 반면,
조선의 경우 그 국성은 왕조가 막을 내릴 때
어마어마한 후손이 남은 가장 큰 이유가 된다.
왕의 자손 4대까지 서자 자손은 금고하지 않는다.
이것이 어느 정도로 대단한 파워를 갖는 원칙이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왕의 자손 4대는 서자 자손을 금고하지 않고,
일반 사족의 경우 이런 원칙 없이 서자 자손을 모두 금고해 버리면,
몇백 년만 지나면 사족의 상당수가 조선 왕조의 국성 집안으로 채워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