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 막부 최후의 전쟁(3): 쿄토수호직京都守護職

에도 막부의 말년은 다른 무가정권 막부의 최후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는데
막부가 전국 무장들간의 싸움, 혹은 덴노가 이끄는 조정과의 싸움에 의해 최후를 맞는 이전 정권과는 달리
에도 막부는 그 최후의 단계에서
쿄토로 몰려든 낭인들 간의 극렬한 칼부림이 이어졌고
이 무질서가 결국 확대되어 메이지유신까지 치달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메이지 유신의 전야에는 일본 전역에서 번을 탈주하여 소위 도막근왕운동을 하는 낭인들이 대규모로 발생했는데
이들은 상당수가 하급무사의 차남 이하로 상속 받을 재산이 많지 않거나,
부유한 농민 집안의 사무라이 흉내를 내는 이들이었다.

이들이 한편으로는 막부편, 또 다른 편으로는 반막부편이 되어 서로간에 극렬한 칼부림이 수도 쿄토를 중심으로 벌어졌다.
이처럼 의도적으로 덴노가 있는 쿄토를 무질서로 끌고 들어가려는 반막부의 의도를 간파한 막부는
쿄토에 새로운 치안 총책 자리를 두게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쿄토수호직京都守護職"이다.
말하자면 쿄토의 치안을 담당하여 유지하는 치안총감 같은 역할로
칼잡이에는 칼잡이로 대항한다고 낭인들을 문자 그대로 무력으로 때려 잡자는 조직이었다.
이에는 정규무사라 할 번의 무사를 동원하기도 했지만
실제로 낭인을 상대하는 데는 같은 낭인이 최고라는 생각이었는지
낭인으로 교토수호직 휘하의 막부친위대를 조직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신센구미新選組다.

앞서 신센구미의 대원들은 막부와 아무 은원관계가 없다고 했지만,
이것은 이들 다수가 에도시대의 막부치하에서 제대로 된 녹봉을 받는 사무라이가 아니었다는 뜻으로
실제로 이들은 막부측의 지원을 받아 신센구미에 근무하며 생계를 유지했으니,
막부측에서야 어떻게 생각하던 간에
신센구미 쪽에서는 자신들이 막부에 고용된 사실상의 막신이라고 생각할 만한 여지가 있었다.
에도 막부 최후의 전쟁(2): 기대도 않던 동북지역의 저항
에도 막부 최후의 전쟁(2): 기대도 않던 동북지역의 저항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막부가 초반에 무너진 것은 당시 마지막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徳川慶喜가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도주하여 은거하며 신정부군에 공순恭順(공손히 따름)하는 입장을 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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