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클로저 운동과 조선후기의 광작廣作
우리가 나라밖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는 시절에
다윈은 벌써 나이 스물 몇에 배를 타고 전 세계를 누비면서
종의 기원 아이디어를 현장에서 잡았다고 했거니와
요즘 나라가 좀 먹고 살고 항공권도 가격이 싸지면서
정말 한국인들이 안 가보는 곳 없이 다 가보게 되면서
새삼 한국사를 한 번 돌아볼 기회를 갖게 되었다고 해도 좋겠다.
한국사 뿐 아니라
필자는 서양사에서도 영국의 농업혁명 당시 유명한
엔클로저운동.
우리나라 광작운동에 영감을 주었다고 알려진
영국 엔클로저 운동이 이름만 익숙할 뿐 그것이 도대체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우연찮게 영국 어느 학회 초청을 받아 현지로 이동할 때
학회가 개최된 지방 도시까지 버스로 이동하게 되었는데
이때 비로소 필자는 영국사에서 나오는 엔클로져가 무엇인지
창밖에 보이는 그네들 농촌 모습을 보고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엔클로져에 방불한 광작운동이 조선에서 있었다고 했거니와
엔클로져는 지금도 영국 농촌을 보면 여전히 그 흔적이 남아 있는데
조선의 농촌에 과연 광작의 흔적이 있는가
필자는 엔클로져 운동이 조선에서 벌어진 사건이 광작운동이라고 했을 때
그런 주장이 과연 영국 농촌의 엔클로져를 한 번이라도 보고 나온 이야기인지
지금은 매우 의심한다.
한국역사의 이해에서 지금 절실하고 중요한 것은
한국문헌을 열심히 파는 것보다
비행기 표 끊어서 나라 밖으로 나가는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영국 시골의 엔클로저를 한번만 제대로 봤다면
한국사에서 광작운동의 주장은 나오지 않았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 editor's note ***
필자가 내가 세계사를 배울 적에는 Enclosure or inclosure를 엔클로저라 했지만 요새는 보니 외래어 표기가 인클로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