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사족의 기원[스핀오프] 도통道統이란 무엇인가

여기서 앞에서 설명없이 쓴 도통이라는 것에 대해 스핀오프를 하나 써둔다.
도통이라는 것은 신유학에서 나온 개념으로 맹자의 가장 끝 부분에 그 발상의 시초가 간략히 나온다.
孟子曰:「由堯舜至於湯,五百有餘歲,
若禹、皋陶,則見而知之;若湯,則聞而知之。
由湯至於文王,五百有餘歲,
若伊尹、萊朱則見而知之;若文王,則聞而知之。
由文王至於孔子,五百有餘歲,
若太公望、散宜生,則見而知之;若孔子,則聞而知之。
由孔子而來至於今,百有餘歲,去聖人之世,若此其未遠也;
近聖人之居,若此其甚也,
然而無有乎爾,則亦無有乎爾。」
도통의 개념은 유학의 정수라 할 부분이 위로는 요순 때부터 차례로 성왕과 성인을 따라 전해지고 내려온다는 개념이다.
도통은 유학 자체와는 다르다.
유학자이면서도 도통과는 관련이 없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유학자이지만 제대로 된 유가는 아니라고 본다.
서양 기독교에서 어느 한 교파가 다른 교파를 바로보는 시각과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다.
저쪽도 기독교도이지만 내가 정통이요 저쪽은 사파이거나 이단이다, 이런 식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송대에 신유학-성리학이 성립하면서,
한-당 시대에 유학자는 몽땅 엉터리 학자로 몰았다.
이들은 요순에서 시작된 도통이 주 문왕 무왕과 주공周公을 거쳐 공자로 이어졌다가
다시 맹자까지 전해진 후 그 맥이 끊어졌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 맥을 자신들이 다시 이었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도통이다.
도통은 학맥과 비슷하지만 완전히 같은 개념은 아니다.
예를 들어 맹자는 공자의 도통을 이었다고 했지만, 맹자는 그 누구를 스승으로 모셔 도통을 이은 사람이 아니다.
스스로 발명하여 도통을 이은 것이고, 송대의 유학자들도 마찬가지로,
성리학을 발명하고 집대성한 신유학자 (정호, 정이, 장재, 소옹, 주희 등등)들은
맹자 얼굴도 본 적이 없지만 역시 도통을 이었다고 생각했다.
맹자부터 송나라 때까지 천년 넘은 기간동안 도통이 끊어졌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송대 유학자들은 같은 유학자이지만 송대 이전의 유학자들과 자신들을 다른 존재로 인식했다.
조선도 마찬가지로,
사림파의 도통이라는 것은 정몽주에서 길재를 거쳐 김숙자, 김종직, 김굉필 그리고 퇴계, 율곡, 조광조까지 이어진다고 보았다.
이를 단순히 학맥이라 하지 않고 굳이 "도통"이라고 한 것은,
이 학맥 바깥의 존재는 모두 사파라는 뜻과 같다.
따라서 우리 학맥이 도통이라고 선언하면, 결국 이 도통에 들어와 있지 않은 유학자들은 죄다 엉터리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아마도 필자 생각에는,
조선 전기의 훈구파들은 조선에서 문묘종사를 하더라도
이것을 도통과 연결시킬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을 것이다.
고려시대에 이미 설총, 최치원, 안향이 각각 문묘종사가 되었지만
이들이 도통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주장은 그 누구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초에 권근과 이숭인 등을 문묘 종사를 하자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 누구도 이들이 도통을 대표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문묘종사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우리 학맥이 도통을 이었기 때문에 문묘종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무서운 것이다.
초기 사람들, 특히 영남 사림들이 자신들의 학맥을 연이어 문묘종사하면서
이들이 동방의 도통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은
국초의 사족들은 죄다 엉터리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이야기였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