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이야기

영남 사족의 기원[4] 문묘종사를 공략하라

신동훈 識 2026. 5. 10.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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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견 없이 문묘종사된 안향

 

영남사족이 조선전기의 고립을 벗어나 중앙정계로 진출하게 된 데는

문묘종사를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 후기가 되면 문묘종사는 그야말로 정권의 승패를 결정하는 사족들의 트로피가 되어

엄청나게 중요한 존재로 부상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조선전기만 해도 문묘종사는 대단한 것은 맞기는 하지만, 

그 정치적 함의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하는 단계라 할 수 있다. 

조선이 건국했을 때 고려왕조 당시 문묘에 종사된 사류는 딱 세명 있었으니, 

설총, 최치원 그리고 안향 (안유)이었다. 

 

문묘종사 초기 멤버인 정몽주. 이가 들어감으로써 훗날 다른 분란의 씨앗이 된다.



그리고 조선이 건국한 후 권근을 종사하자, 도은을 종사하자하는 논의도 있었지만, 

전부 나가리 되고 중종 때까지도 추가로 문묘에 종사되는 이 없이 그대로 내려오고 있었다. 

이 점에 대해서 우리는 별 생각 없이 바라보는 것 같은데, 

만약 조선전기 집권 사족들이 문묘종사가 나중에 이처럼 정치적 함의를 가지고 다루어질 것을 알았다면

중종 이전에 이미 자신들의 도통을 확립하고 자기들 나름의 문묘종사를 시도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종 때까지 적극적으로 자기들 사류의 문묘종사를 시도하지 않았다는 것은,

문묘종사가 갖는 정치적 함의를 발명한 것은 다름 아닌 영남 쪽 사류들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영남의 사족들은 사림의 모습으로 중앙에 나타나면서부터 줄곧 

여말선초 정몽주부터 길재를 거쳐 자신들로 이어지는 도통을 들고 나와 

그 학맥에 놓인 이들을 문묘 종사해야 한다고 집요하게 주장했다. 

문묘종사는 당연히 이들이 발명한 것도 아니고, 

한국인의 문묘종사가 이들로부터 시작된 것도 아니지만, 

자신들의 학맥을 신유학의 도통과 동일시하고, 

그 도통의 선상에 있는 자신들의 스승들을 문묘 종사함으로써 

정치적 명분적 우위에 서겠다는 생각은 실로 이 당시, 

영남에서 시작되어 중앙으로 진출을 시도하는 사족들이 발명했다고 하지 않을 수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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