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책을 쥐고 앉아 죽을 때까지 공부한다는 택도 없는 소리
나이가 들면 드는 생각 중 하나가
가지고 있는 책을 못 버리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책에 워낙 정이 들다보니 그 책을 버리면
내 인생을 버리는 거 같고, 또 언젠가는 다시 읽을 것 같다.
언젠가 썼지만 퇴직한 교수들이 도서관에 기증서적이라 내 놓은 책들을 보면,
이런 책이 많은데, 전부 그런 고물들이다.
당사자들에게는 소중하겠지만 남들은 절대로 필요 없는,
도서관에서도 기증하니 받아는 두고 이름붙여 문고라고 해 놓기는 했지만
저 책을 과연 누가 볼까 싶은 그런 책들.
공부하는 사람끼리는 폼나게 하는 말 중에 하나가
죽을 때까지 공부한다는 것이다.
나는 연구가 천직이므로 정년 후에도 죽을 때까지 공부한다는 것이다.
공부를 하겠다는데 누가 말리랴.

그런데 정말로 죽을 때까지 공부하고 싶다면,
그것이 그냥 소일거리가 아니라 학계에 아무리 작은 여파라도 기여를 하는 그런 연구가 되고 싶다면
가지고 있는 책부터 다 갖다 버려야 한다.
세상이 얼마나 빨리 바뀌는데 수십 년 전 책을 쥐고 앉아서 평생 공부하겠다는 소리를 할 수 있겠는가.
그건 그냥 개인 소일거리지, 그런 작업에 연구라는 이름을 붙여서는 안 된다.
평생 연구를 하려는가?
가지고 있는 책부터 다 갖다버리고 시작하자.
그 책을 다 버려야 비로소 옛날 책 주섬주섬 찾아
하던 이야기 또 하고 또 하고 하는 도돌이표를 벗어나게 되며,
읽을거리 찾아서 책방가서 요즘 나온 책들을 손에 쥐는 순간,
아 이거 죽을 때까지 공부하는 게 만만찮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된단 말이다.
60이 넘은 연구자에게 가장 무서운 것?
학계에서 내 체면을 봐서 내가 하는 소리가 개소리라도 얌전히 듣고 있는 청중이다.
이들에게 고리짝 이야기 들고 나와 고장난 레코드 판처럼 하던 이야기 또 하고 또 하고 하지 않으려면,
오늘이라도 가지고 있는 책은 다 갖다 버려야 한다.
*** [편집자주] ***
이것도 좀 웃긴 게, 한국 학계, 특히 인문학의 경우 반세기 전 내가 한 이야기를 해도, 지금 젊은 놈들이 하는 말과 이렇다 하게 다를 게 없어 한 판 붙어도 끄떡없기 때문이다.
웃기지 않은가? 반세기 전 논문이 여직 통용한다는 사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