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 이야기/오슈 후지와라와 히라이즈미
오슈 후지와라 미라 (3): 야마토의 북진
신동훈 識
2025. 6. 25.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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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에서는 7세기 중반까지도 지금의 동북지역은 야마토의 판도가 아니었다.
사실 이 지점 정도가 당시 일본의 벼농사, 도작의 북방한계선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이 지점을 경계로 남쪽의 벼농사=야마토와
북쪽의 수렵채집 종족=에미시가 대립하고 있던 형국이었다.
위 그림에서 빨간선이 대체로 한반도와 일본열도에서 서기 7세기 후반,
북방과의 경계선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신기하게도 한반도는 대략 저 붉은 선 경계쯤에서 통일신라와 그 이북의 국경선이 그어지고,
동 시기 일본에서는 거의 비슷한 위도에서 야마토와 동북지역의 경계가 지어져 있었다는 말이다.
통일신라와 야마토의 북방 경계선이 결국 당시의 벼농사와 기후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그어진 것을 알 수 있겠다.
각설하고-.
야마토 정권은 서기 7 세기 후반부터 이백년 정도에 걸쳐
마치 우리의 북벌 정책처럼 에미시를 구축하면서 북진하는 작업을 하게 된다.
아래 그림은 바로 그 추이다.
이때 남쪽의 야마토와 북쪽의 에미시는
치열한 혈투를 벌이게 되는데
이 싸움에서 유명해진 인물이 야마토 측에서는 사카노우에노 다무라마로(坂上田村麻呂)라는 사람이며
에미시 쪽에서는 그 쪽의 대추장 아테루이라는 인물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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