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슈 후지와라 미라(8): 다이라노 마사카도
말[馬]은 일본에 도입된 시기가 늦어
서기 5세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대륙 (한반도)에서 들어와
그 흔적을 남기기 시작하는데
서쪽에서 도입되었지만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야마토 조정 말 목장이 대거 동일본, 지금의 관동지역에 설치되는 바람에
말은 동일본 상징처럼 되어버린 시기가 있었다.
헤이안시대까지는 일방적으로 당하고 밀리던 동일본은
헤이안 말부터는 힘을 키워 서일본에 대한 반격의 깃발을 올리게 되니
그 첫 단추가 헤이안 말 덴노에 대해 반란을 꾀한 다이라노 마사카도平將門다.
다이라노 마사카도는 앞서 동일본을 정벌한 간무 덴노 5대손으로
한때 후지와라 섭정 치하에서 일을 했다고 알려졌지만
오래지않아 출생지인 동국으로 다시 내려가 그곳에서 야마토 조정에 대한 반란의 신호탄을 올렸다.
이렇게 보면 그는 우리나라 통일신라시대
한반도 남부 각지로 흩어져 거주하며 현지 세력을 규합하여 반란군이 되어버린
신라 김씨 일족과도 많이 닮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아무튼 다이라노 마사카도는
야마토 조정에 대해 불만을 품은 동국 일대 말 목장 세력을 선동하여 규합하고
"나도 간무 덴노의 5대손인데 나라고 덴노 한 번 못할까보냐"라는,
일본 역사상 전무후무한 반란을 일으켰다는 것인데,
결과를 놓고 말하자면 불과 1년도 못되어 야마토에서 파견된 군사에 의해 진압되어 버렸다.
천황제 만세일계 일본사의 전통에서 보자면 용서 못할 반역자라고 할수 있겠지만,
현대 일본사회에서 다이라노 마사카도의 인식은 우리로 치자면,
후백제의 견훤 정도 되는 포지션인 것 같다.
신라와 고려의 입장에서 보자면 용서 못할 반역자요 대항마이지만
그 자체 역사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인정받는 수준의 인물이라는 뜻이다.
일본 도쿄에 가면,
"간다묘진神田明神"을 모신 "간다신사"라는 것이 있는데,
에도시대에는 막부 수도인 에도를 지키는 에도총진수江戸総鎮守로 숭배되던 신사였다.
이 신사에 다이라노 마사카도가 주신의 하나로 모셔져 있다.
어찌 보면 덴노에 반란을 일으켰던 사람으로 이렇게 숭배될 수 있는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다이라노 마사카도의 반란이 단순한 사적 원한이나 야망만이 아니라
야마토 정권의 정복 이후 내부에서 성장해 나오던 소위 말하는 동국무사
이들의 꿈을 담은 무력시위가 그의 반란이었다고 생각해 보면
에도시대 다이라노 마사카도가 누린 독특한 위치를 짐작할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