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적, 족보, 일기 이야기 (역사인구학)

우리나라 족보에는 왜 이렇게 파가 많을까?

日莫途遠 2026. 8. 6.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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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오래된 집안이이 파가 많은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19세기 이후 양반집 족보들이 권질이 엄청나게 팽창해서 그렇지 

지금 수십만을 거느리고 있는 집안도 17세기까지만 족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권질이 매우 소략한 경우가 많다. 

지금 수십 개 파가 존재하는 집안도 17-18세기 족보를 보면 

그 안에 파가 몇 개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새로운 파가 유입되어 늘어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족보에 끼어들어올 때 개인이 족보를 사거나 위조해서 들어오는 것만 생각하지만, 

실제로 족보의 권질이 팽창하는 과정을 보면 이렇게 한두 명 끼어 들어오는 것보다.

거의 하나의 문중이라 할 만한 사람들이 다른 집안 족보에 새로운 파로 끼어 들어오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다. 

오늘날 수십 만의 종인을 거느린 집안도, 원래부터 그 집안에 있던 파는 몇 개 안되고 

나중에는 전부 나중에 그 문중에 가입해 들어온 파들인 것이다. 

이 새로 유입된 파들은 원래 끼어 들어간 문중과는 별개의 집안이었다. 

어찌 보면 조상도 다르고 완전히 다른 문중으로 기능하다가 한 집안으로 합친 것으로, 

멀쩡히 조선 전기에는 별개 문중이었던 종족이 나중에 보니 다른 집안 유파로 끼어 들어간 경우로 확인되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 18세기 이전만 해도 전국 각지에는 성만 같을 뿐이지 전혀 무관한 집안이 수도 없이 많았다. 

그 많은 집안, 지금 거의 사라졌다.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

다른 집안 족보에 산하 유파로 끼어 들어간 것이다. 

족보에 이렇게 종족이 단체로 끼어 들어오는 경우는, 아예 무관한 사람들보다

이처럼 같은 성을 쓰되 상계 세계를 잃어버린 사람이 많았다. 

성은 같은데 조상이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이 우리도 당신들 후손이니 끼워달라고 단체로 들어오는 것이다. 

이렇게 들어올 때 많이 나오는 이야기가, 우리 조상이 원래 당신들 하고 같은 집안인데

어느 어느 시점에 탄압을 받아 어쩔 수 없이 성을 바꾸고 낙향하여 정착했다는 스토리다. 

사실 여부는 물론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런 명분으로 완전히 별개였던 집안이 세가 있는 집안의 유파로 끼어 들어오는 경우가 19세기 이후 

아주 아주 많다. 

그리고 몇 대 만 내려가면..? 

이런 사실은 받아들인 쪽이나 들어간 쪽이나 다 잊어버리고, 

모두 한 조상님 자손으로 같이 지내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상대의 족보가 있는 집안의 경우, 

20세기 이전 출판된 족보를 따라 17,18세기까만 거슬러 올라가면 쉽게 알 수 있다. 

그 당시 족보를 만드는 쪽이 좀 깐깐한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더라도 족보에 "이런 이런 주장이 있는데 정확히 상고할 수는 없으니 여기 글을 남겨두어 후세의 자료로 삼는다"

는 취지의 글을 남겨두고, 새로 들어온 종족은 원보가 아니라 별보에 따로 싣는데

이것도 한두 세대만 내려가면 별보에서 다 원보로 옮겨 놓는다. 

결국 두 세 세대만 지나가면 원래부터 같은 종족으로 모두 알고 화목하게 지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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