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적, 족보, 일기 이야기 (역사인구학)

우리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영조대왕

신동훈 識 2026. 7. 28.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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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

 

우리 역사를 보면 

일반적인 평판보다 별로 볼 것이 없는 양반도 있고, 

알려진 것보다 훨씬 대단한 사람도 있다. 

대표적으로 퇴계, 율곡, 다산 등 성리학자들은

우리가 아는 것 만큼 학문의 영역에서는 대단한 양반들이 아니다. 

성리철학 등에서는 중국 북송대 학자들의 이야기를 하드카피하다시피한 것이 많고, 

소위 실학자들도 독서의 범위가 넓지 못해 동시기 일본보다도 뒤쳐진 양반이 대부분이다. 

그에 반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훨씬 대단한 양반도 있다. 

영조대왕 같은 양반은 명군으로 알려져 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대단한 양반이다. 

이 양반의 치세에 조선사회의 근본 틀이 바뀌었다고 해도 되고, 

영조의 치세 전과 후는 완전히 다른 나라라고 해도 좋을 정도이며, 

이러한 변화가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 바로 호적이다. 

영조 연간 이전과 이후가 얼마나 달랐던지, 이 시기를 지나면 이것이 과연 같은 나라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신분 상승과 양반 직역자의 확충의 폭이 컸다. 

노상추 일기를 보면, 

그래도 국왕을 욕을 할 수는 없으니 완곡하게 써놓긴 했는데, 

이 집안은 서자와 적자간에 갈등이 심했던 집안인 바, 

서자들이 저렇게 설치는 건 영조대왕이 뒤에서 선동하는 거 아닌가, 

그러니 쟤들이 저러는 거 아닌가, 하는 투의 글로 써 놓은 부분까지 있다. 

정치라는 게 무슨 말로 되겠는가. 

호적만 봐도 영조는 대단한 명군이었다는 것 금방 알 수 있다. 

균역법만 해도, 1850년을 기점으로

이 법의 관철을 위해 선무군관을 뽑아 내어 군포를 부과하고, 

그 이후에 빠른 속도로 향촌 사회가 변화하는 양상이 호적에서 보이는 것을 보면, 

이 법의 실제 여파가 우리 생각보다 훨씬 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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