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연구

응도당과 연려실

신동훈 識 2026. 5. 7.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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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암서원에 걸린 당호 편액을 지인이 촬영하여 보내준 사진을 뽑아 걸었다
이광사가 썼다는 글씨다

방에 원래 걸어둔 현판은 돈암서원의 응도당 편액 사진이다. 

지인이 크게 사진을 찍어 뽑아 준 것을 출력하여 방 한 편에 걸어 두었는데, 

일설에 의하면 송시열이 썼다고 하는데 자세한 내력은 모르겠다. 

필자는 호나 자 같은 복고 취향은 없는 사람으로, 이름 석자 남기기도 빠듯한데 호나 자는 필요 없다고 본다. 

위의 편액사진도 당호는 아니다. 

다만 논문을 쓸 때 내용을 마지막에 결정화하는 작업이 응도당이라는 당호와 왠지 상통하는 듯 해서 걸어두었다. 

연구실에 하나 더 오늘 걸어 두었는데 이번에는 이광사가 썼다고 알려진 연려실 편액이다. 

국박에 있는 것으로 위키에 크게 뽑은 사진이 올라있길래 하나 출력해서 뽑아 방 한 켠에 두었다. 

이긍익의 연려실 기술 서문에 보면
초년에는 뭐 좀 큰 업적을 남길 줄 알았는데

늘그막에 돌아보니 야사나 쓰며 자족하는 인생이라는 내용의 글이 연려실기술 서문에 있는데, 

바로 그 이광사와 이긍익이 야사를 써 내려가는 방의 당호가 연려실이다. 

그 연려실이 왠지 별로 대단한 평가를 못받아도 남들이야 보든 말든 계속 글을 쓰고 앉아있는 필자의 작업과 어울리는 것 같아 사진으로 뽑아 방 한 켠에 걸쳐 두었다. 

연려실기술 서문에 보면 이 글씨는 그 당시에도 여러 사람이 편액을 만들어 자기 방에 걸어두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그런 인생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았던 모양이다. 

필자의 60이후 연구 인생은 결국 응도당과 연려실이 교차하는 그 중간 어디쯤에서 끝나지 싶은데, 

그리 보면 필자가 작업하는 방에 잘 어울리는 글이지 싶어 사진으로나마 뽑아 걸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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