探古의 일필휘지

이것은 도마뱀일까 도롱뇽일까, 아니면 다른 그 무엇이었을까

버블티짱 2025. 2. 20.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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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으로 한국인에게 채워진 족쇄가 약간은 헐거워졌던(그러나 풀릴 기미는 없던) 1920년대,

한국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끈 잡지라 하면 아마 대부분 <개벽>을 꼽을 것이다.

천도교에서 만들었으되 종교색이라고는 별로 없이 온갖 시사를 다루었던 이 잡지는 그 자체만으로 일제강점기를 연구하는 이들의 노다지 광산이 아닐 수 없다.

그 <개벽> 29호(1922년 11월)에 "천지현황天地玄黃"이란 제목의 꼭지가 실렸다. 

여러 에피소드가 옴니버스식으로 실린 기사인데 그중 이런 대목이 나온다. 

한자에 토를 달아 읽는 식이므로 최대한 풀어본다.

- 진고개[泥峴] 조선관내朝鮮舘內 수족관水族舘에는 근자에 함경남도 낭림산 깊은 소沼에서 나온 이른바 용龍이라는 기이한 동물을 구입하야 일반에게 관람케 하는데, 그 동물의 머리는 전부 뱀과 같고 몸뚱이는 석척(蜴蜥, 도마뱀)과 같으며 등과 배에 흰색 반점이 있고 네 다리에 다섯 발톱을 갖추어 자유롭게 걸어다니며 길이는 5척 이상에 이르고 때때로 운무雲霧를 능히 지어 몸을 감추는 특징이 있는데, 모某 학자의 말에 따르면 추정연령推定年齡이 640여 세歲라 한다. 
 

코모도왕도마뱀


뱀 머리에 몸은 도마뱀이요 다리가 다 달렸는데 키가 150cm에 달했다니 꽤나 거대한 파충류임에는 틀림없다. 
 
글로만 보아도 신기한데 실물은 또 어떠했을까. 
 
생물학 하시는 분들께 동정을 부탁드리는 동시에....
 
그런데 이 신기한 파충류를 누군가 사다가 유리어항 안에 넣고 공개한 모양이다. 

그것도 그냥 보여주는 게 아니라 돈을 받았다. 
 
이를 두고 <개벽> 기자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 이것이 과연 용인지 그 진가眞假는 알 수 없거니와 이와 같이 영물靈物인 용이라도 그 시운時運이 불리하여 사람에게 잡힌 물건이 되면 풍운의 조화를 능히 베풀지 못하고 지렁이[蚯蚓]과 별로 다를 바가 없을지니 이 용을 볼 때에 누가 감개무량感慨無量의 마음이 없을손가!  
 
<주역>에 이르기를 현룡재전見龍在田에 이견대인利見大人이라 하더니, 지금 이 용을 보려면 대인大人은 20전錢을 주고 소인小人은 10전을 주니 이견소인利見小人일 뿐.

기자에게 저 '용'은 다른 게 아니라 조선, 조선 사람들이었던 모양이다.
 

이구아나

 
덧붙여....이 이야기를 읽어본 많은 분들이 이 '용'은 이구아나 아닌가 하는 의견을 주었는데, 그러면 그때 함경도는 이구아나가 대형화해 살 만큼 따뜻했다는 말일까.
 
아니면 저걸 사다 판 사람이 대충 신비스러운 곳 아무데나 주워섬긴 것일 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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