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더스 문명

인더스 문명 연구와 인도-서구 관계

신동훈 識 2026. 4. 21.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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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김단장께서 쓰신 글에 조금 덧 붙여본다. 

필자도 어찌어찌 하다 보니 인더스문명 연구에 한 다리를 걸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그쪽 사정을 어깨 너머로도 좀 접하게 된 까닭이다. 

사실 인도와 유럽, 특히 영국과 미국 고고학의 관계는 

한국과 일본 고고학 관계 비슷하다. 

인도 역시 자국 고고학의 기틀을 영국고고학자들이 닦았고, 

우리나라에서 낙랑 유적을 일본인 고고학자들이 주도적으로 조사한 것처럼, 

인더스 문명 유적도 영국인들이 발견한 것이고, 

인도에는 우리나라의 문화재청이 단순한 행정업무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박물관 업무를 관장하고 

발굴까지 주도하는 막강한 힘을 가진 ASI (Archaological Survey of India)라는 기관이 있는데, 

이것의 전신이 바로 영국이 식민지배 때 세운 기관으로, 독립 후 그대로 그 기관이 이어져 오늘날에 이르는 것이다. 

필자는 인도에서 공부한 사람이 아니고, 단속적으로 인도 고고학자와 협조하여 인도 발굴 현장을 방문, 연구 조사한 경험밖에 없어서, 

그곳 정황을 역시 어느 정도 밀도 있게 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인도의 분위기는 역시 파키스탄과는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필자가 본 바 인도에서는 일단 자국 발굴을 외국인에게 주도권을 내주지 않는다. 

따라서 해외 학자들이 주도하는 발굴의 시대는 적어도 인도에서는 그 시대가 끝났다고 보아도 좋을 것 같다. 

필자가 본 바 인도에서는 발굴과 연구 조사의 주도권은 인도인들이 확실히 쥐고 있었고, 

외국인들의 연구는 개방되어 있었지만, 대체로 개인 단위로 참가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라키가리 조사때 참가한 것처럼 

고고과학 기술을 가지고 발굴단에 합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마크 케노이어 교수. 서울대에서 예전에 한번 초빙했다.

 
필자가 인도에서 듣기로 파키스탄 사정은 조금 달라 해외의 학자들이 어느 정도 목소리를 높일 수도 있던 모양이긴 한데, 

그렇다고 해도 파키스탄 역시 과거와는 조금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김단장께서 올리신 기사의 마크 케노이어 교수는 파키스탄에서 계속 작업을 한 미국 교수로 이름 높은 양반인 것은 분명한데, 

그 영향력이 과거 같지는 않다고 들었다. 

아무래도 나이도 나이려니와 

남아시아의 경제력도 예전보다 나아져 해외 학자들이 이 지역에서 활동하는 것이 쉽지 않아진 것도 이유가 되겠다.
 
모헨조다로 최근 발굴은 어찌 봐야 하는가?
https://historylibrary.net/entry/recent-excavation-at-Mohenjo-Daro

모헨조다로 최근 발굴은 어찌 봐야 하는가?

모헨조다로는 내가 중고교 시절 세계사를 접할 때는 너무나 친숙한 이름이라, 나중에 개사기로 드러나기는 했지만 이른바 세계 4대 문명 중 하나라 해서 인더스 문명을 대표하는 유적 혹은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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