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 이야기: 신동훈 & 김태식/슈겐도와 일본 미라 이야기

[슈겐도와 일본 미라 이야기] (번외 2): 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과 북방의 탄생

초야잠필 2025. 1. 20.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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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쓰네와 벤케이, 그리고 미라의 관계를 이야기 하는 데 있어 

그 공간적 무대인 일본 동북지역에 대해 옛날에 써 두었던 글에 조금 더 보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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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막부 최고 실권자를 지칭하는 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은

사실 무가武家정권에 고유한 것은 아니었고 그 기원은 헤이안 시대에 있다.

처음 "정이대장군"을 칭할 때 "이夷"란 일본 동북지역에 거주하던 에미시(蝦夷 에조)를 말한다.

위 지도에서 보듯이 우리 통일신라쯤에 일본은

지금의 동북지역을 차지하고 있던 에미시를 북쪽으로 밀어내는 "북방개척"을 하는데,

이 사업에서 현지의 에미시와 계속 군사적으로 충돌했다.

이때 나온 것이 이른바 "정이대장군".

이 때문에 북방에 무력을 파견하는 조정이 그 군대의 수장으로 임명하는 정이대장군은

원래 무가武家와 무관한 공가公家의 사람들이 임명되는 일이 상례였다.

이렇게 헤이안시대에 임명된 공가 출신의 "정이대장군" 중에 유명한 이가 

사카노우에노 다무라마로(坂上田村麻呂)라는 사람이다. 

 

사카노우에노 다무로마로. 정이대장군으로 북벌하여 에미시를 격파하고 북쪽으로 영토를 크게 넓혔다.

 

이 사람은 도래계 씨족 출신으로 

덴노의 명을 받아 정이대장군으로 출진하여 북벌을 추진하였는데 

북벌의 기초가 되는 전략적 거점성을 여러 개 축조하고 

현지 에미시와 전투를 벌여 그 족장을 사로 잡는 등 

그 이전까지 지지 부진하던 야마토 정권의 북벌을 크게 전진시킨 공이 있다. 

이 사람은 이후에 신격화해서 수도인 평성경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받들어져 

죽을 때도 선 채로 이민족 땅인 북쪽을 응시하며 묻혔다던가,

뭐 그런 전설이 있는 것으로 안다. 

시대가 바뀌어 무가의 시대가 열리자

정이대장군 자리를 무사의 신분으로 처음 꿰찬 이가 바로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 賴朝, 1147~1199]였다.

가마쿠라 시대에도 정이대장군은 무가가 독점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고, 공가의 인물들이 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이때도 실권은 무가에게 있지만 어쨌건 가마쿠라 시대까지도 쇼군은 무가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이처럼 일본의 무가 정권=막부는 예외없이 동일본 지역에 근거를 두었는데,

정작 쇼군의 정식 명칭인 "정이대장군"이 이 지역 에미시를 가리킨다는 것은 재미있는 사실이다.

참고로 겐페이 전쟁 때까지도 서일본 사람들 사이에는

동일본 무사들은 자신과는 다른 야만스런 놈들이라는 개념이 있었다고 한다.

미나모토 요리토모가 전임 정권인 헤이케와 달리

끝내 천황을 지근거리에서 옹립하지 않고 별도 무가 정권을 가마쿠라에 세운 것도

바로 이러한 동일본 무사들의 이질적인 성격에 기원했다고 보는 경우가 많다.

이복형인 요리토모의 추적을 피해 요시쓰네가 그의 심복들과 함께 동북지역으로 도주한 이면에는 

어찌보면 이처럼 이질적인 곳으로의 탈주였다고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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