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훈 識 2025. 10. 8.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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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오는 대동보들 보면 

편집위원회를 만들고 그 아래에 정관계 출세한 이들을 전부 집어 넣어 

대동보의 위용을 과시하지만, 

일제시대까지만 해도 대동보를 내는 이들은 

문중의 영감님들로 신분을 유학, 첨지, 승지, 등으로 적어놓았다. 

물론 일제시대 후반은 모르겠고 

일제시대 초반에 나온 족보의 이야기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어느 집안의 족보를 보면

대략 60년, 2세대 간격으로 파보를 내는데

첫번째 족보는 1600년대에 나오지만 

그 집안 파보는 1800년에 한번,

두번째 파보는 1870년 경 한번, 

그리고 세번째 파보가 1920년대 (일제시대).

마지막 파보가 1990년에 나오는.것이다. 

여기서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1870년대 족보까지도 서자기록은 그대로 적어 둔데 반해  

1920년대 족보로 넘어가면서 서자를 더이상 족보에 쓰지 않는 것을 본다. 

이 1920년 판 파보의 범례에는 몇가지 이야기를 적어 놓았는데 

한자로 되어 있어 흥미로운 부분만 발췌하여 번역해 본다. 

이번 족보에서는 "庶"짜는 모두 빼되 아들과 딸의 서차는 남자를 앞에 두는 뜻에 따라 그렇게 쓴다. 

적자는 비록 서자보다 나이가 어리더라도 종법에서는 반드시 적자가 후에 서자가 나오는 것이니 종통을 중시하여 그렇게 쓴다. 

자녀가 없으면 無后라고 쓰며 아들이 없고 딸만 있으면 아들이 없다고 쓴 후에 사위 이름을 적는다. 

부인은 1품부터 유학까지 모두 配라고 쓴다. 첩은 室이라고 쓴다. 

옛 족보에서 혹 빠진 집은 지금 옛날 족보에 없다고 하여 싣지 않으면 같은 종족의 도리가 아니므로 자손이라는 것이 충분히 증명이 되면 족보에 쓰는 것을 허락한다. 


이처럼 1920년대 족보에서 족보는 서자에 대한 별도의 기술이 빠지고 바야흐로 서자 없는 족보의 시대를 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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