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노년의 연구

임진왜란은 왜 그렇게 의병이 많았나

신동훈 識 2025. 8. 18.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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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국난이 벌어지면 의병이 일어나는 것을 당연하게 안다. 

그래서 임란 때도 의병에 별 감흥들이 없다. 

오히려 의병이 없던 시대를 질타한다. 

그런데 의병이란 건 사실

안 해도 되는데 들고 일어났다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이는 조선의 독특한 군역제도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동시기 일본이라면 의병은 나올 수가 없다. 

군역은 토지와 결부되어 

지급된 토지 만큼 군역을 지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에도시대에도 사무라이들은 받는 녹봉만큼 

병역을 지게 되어 있었다. 

따라서 흑선이 도래했을 때 막부가 동원령을 내리면

당연히 일정 숫자의 사무라이들은 모이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 사이에 의병이 나올 여지는 전혀 없다. 

우리의 경우는 양반들의 경우, 

16세기에는 수십, 수백의 노비를 거느리고 농장 경작을 했지만 

정작 국란이 오면 지고 있는 군역이 없었다. 

자기만 없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거느린 노비까지도 통채로 군역이 없는 지라 

국란이 오면 들고 일어나 적과 싸우게 되면

이는 "의병"이 되었다. 

일본이나 유럽이라면 이런 "의병"은 나올 수가 없다. 

봉건제란 결국 받은 토지만큼 병역을 지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양반이 수십 수백명의 노비를 거느리고 농장사역을 한다는 말은

수백명이 몽땅 군대를 빠진다는 말과 같다. 

16세기에는 이러한 대규모 노비사역이 전국적으로 만연되어 있었던 바 

율곡이 병판을 하던 시기, 아마 전국적으로 군대를 끄어 모아 봐야

쓸 만한 병력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몽땅 군역에서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임란 발발후 전국적으로 의병이 무수히 나온 것은 

그만큼 군역에서 빠져 있었던 사람이 많다는 뜻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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