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의병의 구조
필자가 과문해서인지
우리나라 임진왜란 의병의 구조에 대해서 한 번도 논문을 본 적이 없다.
필자도 비전공자로서 과문하여 남아 있는 모든 전적을 살펴 볼 정도가 당연히 안되지만
막연히 추정을 해보자면 이렇다.
임진왜란 때 의병-.
조헌과 칠백의총처럼 도학자와 그 제자가 무리 지어 만들었을까.
우리는 조헌과 칠백의총만 생각하는데
사실 금산전투에서 전몰한 것은 조헌과 칠백의사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영규대사가 이끈 승군도 있었다.
당연히 조헌과 칠백의사 아래에 승군이 배치되지 않았겠는가?
유교국가인 조선에서 아무리 당시 승군이 대접받는다 해도,
유학자와 승려가 만나면 상하관계란 사실 뻔한 것이다.
임란이 발발한 16세기, 그리고 17세기에는
우리나라 향촌사회는 수십, 수백의 노비를 사역시키는 양반들이 지배하고 있었다.
이때 왜적이 쳐들어와서 의병을 일으켰다.
그러면 노비들은 놔두고 양반들만 모여 의병으로 나섰겠는가?
당연히 일부 노비는 계속 농사를 짓도록 놔두고 나머지 노비를 끌고 그 양반은 의병에 나설 것이다.
이렇게 노비부대를 이끌고 나선 양반들이 학맥과 지연에 따라 상하 질서를 형성하고
모여 합동 작전을 펴는,
아래로는 수많은 노비를 이끈 양반들의 독립부대-.
이것이 임진왜란 당시 의병의 실체가 아닐까.
봉건시대 일본에서
사무라이 하나가 전투에 나서면 종자 서넛이 따라 붙는 법.
조선시대에는 의병부대가 유학자들만 덜렁 나섰을까.
유학자 누군가가 창의하여 의병부대를 만들면
이에 호응하는 양반 자제는 당연히 자기 집 노비를 끌고 그 부대에 참여할 것이니
임란 당시 의병부대란 위로는 양반 아래로는 노비와 승군이
복잡한 중층적 서열을 형성하여 있던 부대였음이 틀림없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