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연구

전시과도 사전을 부수고 성립한 것인가?

신동훈 識 2026. 7. 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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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룡사 각석

 

앞에 관룡사 각석에 대해 좀 더 써 보면, 

우리나라 려말선초의 과전법은 

성장해오던 사전-농장을 혁파하고 

거기서 공전을 반강제로 생성하고 이를 과전으로 만들어 

국가운영의 토지제도 근간으로 삼았다. 

이 과전법과 거의 판박이 제도가 5백년 전에 한번 더 있었으니, 

바로 전시과 제도이다. 

전시과 제도는 사실 과전법제도와 거의 비슷하다. 

국가가 수조권을 분급하는 공전을 편성하고 

이를 개인에게 분급하여 수조권을 받아 먹게 하지만, 

그 땅의 소유주는 국가다. 

그렇다면-. 

전시과제도도 과전법처럼 

통일신라 말에 이미 발달해 있던 사전을 

반강제로 부수며 만들어진 제도일까? 

아니면 통일신라시대는 사전이 없이 그냥 공전을 두고 수조권만 분급하던 것을 

그대로 이어받아 전시과로 편성한 것일까. 

어느 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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