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노년의 연구

영남권이 현격히 낮은 전주이씨 분포

신동훈 識 2025. 12. 23.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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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본관별 분포가 

국세조사 통계로 제공된다. 

여기 보면 전주이씨 분포가 있는데 

이 분포도를 보면 생각해야 할 부분이 매우 많다. 

전주이씨 분포는 서울과 호서일대를 기반으로 전국적으로 분포하지만

영남지역 분포가 확연히 주변보다 낮은 것을 볼 수 있다. 

이 분포가 만들어진 이유가 무엇일까? 

이렇게 분포가 만들어진 특별한 역사적 연유가 불확실하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분포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조선건국 이후 전주이씨의 확산이

과전법 체제를 타고 이루어졌기 때문이라고 어렴풋이 짐작한다. 

과전법이라는 것이 조선 국가 전체를 대상으로 비교적 균일한 비율로 성립된 것이 아니라 

과전이 집중적으로 형성된 지역이 있는 듯 한데, 

이러한 흐름에서 영남이 어느 정도 예외적 상황이었던가 싶은 부분이 있다. 

우리는 과전법 체제하면 전국을 전일적 지배하여 과거의 땅을 일괄 몰수하고 

북한 토지개혁하듯이 과전을 재창출하였을 것이라 보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조선왕조 건국이후 

조선은 국성인 전주이씨의 경우

선원계보로 파악하며 왕가에서 분리된 이후 

몇대까지는 출사 없이 집안을 유지할 수 있게 하였던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이 땅이 도대체 어디서 나왔겠는가 이것이다. 

우리는 과전법을 국가 관료에게 지급하는 수조지로만 생각하지만

실제로 해가 지나감에 따라 무더기로 나오는 왕실 종친, 

이들은 어떻게 해서든 적지 않은 땅을 분급하여 주어야 했는데, 

이 땅이 도대체 어디서 나왔겠는가 하는 것이다. 

선원계보를 보면 이미 조선 중기만 되면 왕가의 후손이 발에 차일 정도로 많아졌는데

이들은 몇대가 내려가기 전에는 아예 출사를 막아 놓았으므로 

반드시 새로운 토지가 창출되어 분급되어야 했다. 

그 흐름이 위 지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필자는 보는데 

아직 구체적으로 확인한 바는 없다. 

조선왕조 성립 이후 망할 때까지 

영남 지역은 서울 경기를 중심으로 한 소위 경화사족에 대립하는 입장을 항상 유지하였는데

그러한 긴장의 이유의 하나로 위 지도를 들 수도 있겠다고도 생각한다. 

 

*** [편집자주] ***

 

이는 무엇보다 영남권 출신인 편집자가 피부로 느끼는데, 주변을 봐도 전주이씨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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