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이 남긴 막대한 저서에 우선하는 말

정약용은 그 저술의 질을 막론하고,
우선 다작가다.
평생 글쓰는 일을 업으로 한 사람이라
저작의 양이 적지 않다.
그런데 이렇게 그가 남긴 막대한 저술보다
훨씬 세태를 잘 반영한 말이 있으니
바로 서울 떠나지 말라는 말이다.
우리나라 족보를 보면
대략 조선전기에서 중기로 넘어가는 지점에
전국 각지로 사족들이 이동한 정황이 많이 보인다.
그 이유가 뭔지는 잘 모르겠고,
임란의 와중, 혹은 그 이후에 크게 혼란에 빠진
토지제도 때문에 그 공백을 노려 낙향들을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같은 씨족이라 해도 서울 근처에 남은 종족과
그 시절에 어떤 이유에서건 서울 근처를 떠나 지방으로 낙향해 뿌리 내린 종족.
이 두 종족의 흥망성쇠를 본다면,
낙향한 쪽이 크게 못 미친다고 하겠다.
대략 서울 근교, 넓게 보아 경기도 일대에 자기 집안 세거지를 확정하고
어떻게든 버틴 종족들이 사족으로 수월하게 버티며
문과급제, 대과급제를 넘나들지
지방으로 한번 낙향해 버린 종족들은
소과급제도 어렵고 무과급제 한 번 하면 동네 경사가 있을 지경이다.
물론 지방 낙향한 종족이라고 해도 다 그렇겠는가만은
세거지를 떠난 사족이 원래의 위상을 유지하기는 극히 어렵고,
우리나라 조선후기에서 시기가 뒤로 갈수록 소위 말하는 경화사족의 권력 독점이 강화되었다는 점에서 본다면
18-19세기로 가면 지방으로 낙향한 종족의 사족으로서의 운명은 뻔하다 하겠다.
정약용의 저술 중에 필자에게 깊은 공명을 준 것은 사실 별로 많지 않다.
이 부분은 그의 명성을 생각하면 이례적이라 할 수 있는데,
정약용은 많이 과대평가 되어 있다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정약용의 글에서 무릎을 친 부분이 바로 이것인데,
그가 이 편지를 남길 생각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르겠지만,
그의 아들에게 서울 떠나지 말라고 신신당부한 그 지점에
그가 사족으로서 속셈을 토로한 가장 솔직한 부분이 있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