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선물과 절인 생선
조선시대 양반끼리 주고 받던 "선물"은
요즘 선물과 의미가 다르다.
대부분의 생필품은 스스로 구입하여 조달하는 탓에
요즘 "선물"이라 하면 흔히 보기 힘든 물건을 증정하는 경우가 많겠지만
조선시대에는 양반들끼리 "선물"은 그런 것이 아니고
일종의 생필품 패키지다.
그래서 "선물" 목록을 보면 거의 대동소이하다.
이 선물 목록은 일기를 보면 꼬박꼬박 자세히 적어 놓았는데
이 선물에 해당하는 또다른 선물을 이번에는 이쪽에서 증정해야 할 것이겠다.
이 시기 "선물"을 보면 눈에 띄는 것이
절인 생선이 아주 많다는 것이다.
물론 네발 짐승의 육포가 오는 경우도 있는데 이건 아주 드물고
돼지고기는 거의 선물에 나타나지 않고
소고기는 가끔 나타나는데 소금 간을 해 놓지 않아 빨리 먹어 소비해야 하는 상태였던 것 같다.
요는 생선인데
절인 생선이 아주 많이 등장한다.
그리고 생선 종류도 다양하지 않다.
필자 어린 시절에는 생선을 줄에 꿰어 팔아 이를 구입하여
부엌 한 켠에 걸어둔 기억이 있는데
이런 모습으로 선물이 증정되었다고 보면 될 듯 하다.
왜 양반끼리는 선물을 주고 받아 물품을 이런 식으로 조달했을까?
가장 큰 이유는 양반끼리 선물을 주고 받는 것 자체가 그들 사이 유대를 강화하는 측면이 있다는 점,
다음으로 화폐경제가 아직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니 시장까지 가서 들고간 것을 원하는 것으로 바꾸어 오는 것이
그다지 쉽지 않았겠다는 생각을 한다.
말하자면 양반판 물물교환이 바로 선물경제이겠는데,
화폐 경제 침투가 두드러지게 되면 어느 시점에 이 선물경제는 자취를 감추었을 거이라 보는데,
이리저리 기존의 연구성과를 보면 대략 그 시점은 18세기 후반 정도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 편집자주 ***
이 선물 경제는 20세기 벽두까지 계속됐다.
왜?
화폐경제가 이때서야 비로소 숨통을 트기 시작하는 까닭이다.
시장?
없다.
그 흔한 오일장도 아주 늦게서야 등장했다.
괜히 간고등어겠는가?
이 조선시대 모습이 실은 내가 어린시절 겪은 경북 내륙지방 풍경이기도 했다.
누누이 이야기했지만 한국 농어촌은 70년대까지도 물물교환이 경제활동 근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