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적, 족보, 일기 이야기 (역사인구학)

조선시대 승병의 미스터리

日莫途遠 2026. 9. 7.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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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게 왜 궁금하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필자는 임진왜란 이야기를 볼 때마다, 

승병이라는 존재가 정말 아리송한 존재였다. 

절에서 도 닦던 사람들이 왜 임란 때 들고 일어난 것이며, 

그것도 대접이나 받던 사람들이라면 모를까, 

양반들 뒤치닥거리나 하고 불교는 옆집 강아지 취급 받던 시절에

도대체 왜 왜병이 침투함에 승병들이 궐기하였을까?

아니, 도대체 의병의 정체는 무엇이고 승병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 의병과 승병은 정말 드라마에 나오듯이

분기탱천한 의사 한 분이 손을 불끈 쥐고

"왜적을 타도 합시다" 하니 너도 나도 "옳소" 하고 집에 들어가 쇠스랑 곡괭이 들고 나와 

전쟁터로 몰려간 그런 사람들이 의병이고, 승병이었으까?

의병이 뭐가 궁금하냐 하면 할 말도 없다만, 

문제는 우리나라 조선시대 호적을 보면

의병들이 도대체 누구를 끌고 전쟁터로 나갔는지 매우 모호하다는 말이다. 

양반인 의병장은 자기집 노비를 끌고 전쟁터로 간 것일까?

아니면 유학, 업유, 업무 등 평소 양반소리 듣던 이들끼리 조를 짜서 의병이 되는 것일까?

동네 노비도 아니고 양반도 아닌 일반 평민을 데리고 나갔을까? 

이것도 정말 웃기는 이야기다.

왜냐하면 멀쩡히 평민이라면 군적에 들어가 있었을 텐데, 

관군에 들어가야 할 평민을 어떻게 의병으로 데리고 나가느냔 말이다. 

우리나라 의병의 구조를 보면, 의병장 이름이나 알려져 있지, 

이 의병장이 도대체 누구를 데리고 나간 것인지 디테일이 없다. 

조선시대 승병도 마찬가지인데, 

최근 필자가 조선시대 일기 하나를 보다가 궁금증이 풀렸다. 

임진왜란 일어나기 50년 전쯤의 일기인데 

이미 승병들은 군적에 편입되어 승병으로 조직화해 있었더란 말이다. 

일반 평민들이 군역을 지며 직역을 하나씩 차고 있듯이

승려들도 모두 승병 군적에 편입되어 관리되고 있었던 바, 

이를 빼달라는 부탁을 양반들에게 심심찮게 편지로 날린다. 

임란이 일어나자 양반들이 끌고 나간 승병은 바로 이들이 틀림없다. 

이들은 양반들과 일종의 경제 공동체적인 관계에 놓여 있었는데, 

전쟁 발발과 함께 승군으로 편제 해 놓은 걸 홀랑 들고 의병들 서번트로 데리고 출정했음이 틀림없다고 본다. 


*** [편집자주] ***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조선왕조의 고려 불교에 대한 이해를 봐야 한다.

그들은 불교가 사회를 좀 먹는다 봤으니 첫째 출가하면 결혼을 하지 않아 인구를 줄이며

둘째 임금에는 충, 부모에는 효를 다하지 않는 버러지며

셋째가 가장 중요한데 군대가기 싫은 사람들의 온상이기 때문이라 했다.

이런 인식에 따라 조선왕조는 불교를 철저한 국가 권력 아래 두게 된다.

이를 위해 도첩제를 도입해 출가 숫자를 통제했고

출가해서도 군적에 넣어 편제했으니 대체복무제였다.

조선 시대 승려들은 남한산성 축성 보지 사례에서 보듯 실은 군인 승려였다.

그들은 국방의 의무를 졌다.

이들이 전쟁이 터지자 동원된 것이다.

임란이 터지자 선조는 불교계 오야붕 서산대사를 팔도십육종도총섭八道十六宗都摠攝에 임명하는데 이는 군사조직이었고 승려들의 대장군 총섭 총대장이었다. 

조선시대 승병은 의병이 아니라 정식 군대였다. 

흔히 고려 왕조는 불교에 관대했다지만 저기서도 승려 숫자를 관리하고 통제했다.

그리 하지 않으면 전부 절로 도망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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