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는 없던 구제고등학교
해방 전 조선에는 구제고등학교가 없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조선에서 고등보통학교 (고보)가 고등학교라고 오인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고등학교가 조선에는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일제시대에는 대학진학을 위해서는 고등학교에 들어가는 것이 제대로 된 코스였다.
물론 고등학교 들어가지 않고도 대학은 들어갈 수 있었지만
아주 어려웠다.
소학교-중학교-고등학교 코스를 밟지 않으면 제대로 된 대학을 쉽게 들어갈 수 없었고,
이 때문에 조선에서 고보를 나온 조선인들은
대학 진학이 쉽지 않았다.
이 구제고등학교에 해당하는 유일한 조선의 학교가 경성제대 예과다.
대학예과와 구제고등학교는 급이 같고, 중학교와 고보가 급이 같은 중등학교다.
일제시대에 위와 같은 모자가 구제고등학교 모자였다.
이수일과 심순애에 나오는 이수일이 바로 고등학생이다. 이수일이 쓰고 다닌 모자가 바로 위와 같은 고등학교 모자다.
반면에 당시 중학교 학생은 뭘 썼느냐,
이런 모표가 달린 모자를 썼다. 이것이 일본의 구제 중학교 모표이며
비슷하게 디자인 된 모자를 일제시대에도 경성중학교 등 중학생들은 썼다.
앞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일제시대에 중학교는 거의 일본인이 다녔다.
조선인들은 거의 고보로 진학했다.
당시 조선인들이 다닌 고보생들은 어떤 모자를 썼느냐.
이것이 조선의 고등보통학교 모표였다.
이 모표를 보면 당시 동급의 중학모표가 아니라 일본의 고등학교 모표를 오히려 더 닮은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인들은 당시 조선에 있었던 중학교는 제외하고 고등보통학교끼리 서열을 따졌다.
예를 들어 위에 보이는 가로선이 2개는 평양고보 (분단으로 없어짐),
1개는 경성제1고보 (현재의 경기고), 3개선은 대구고보 (현재의 경북고)에 붙였다.
고보가 생긴 순서대로이다. 가장 먼저 생긴 경성1고보가 가로선 1개, 평양고보가 가로선 2개, 대구고보가 가로선 3개이고
이 가로선의 숫자가 각 고보의 자존심의 순서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