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선비가 왜 그렇게 행동 했는가를 보고 싶거든

눈을 들어 그들의 노비와 땅을 보게 하라.
우리는 조선시대 선비들의 행동을 결정짓는 규범이
성리학적 철학, 역사관, 윤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남들 보라고 쓴 정치회고록 같은 일기를 빼면
나날의 일상사를 적어 놓은 일기들을 보면,
그런 철학, 역사관, 윤리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이것은 소위 말하는 대학자들도 마찬가지로
다산 같은 당시의 일대 거장도
은밀한 편지에서는 너희는 절대로 서울 뜨지 말라고 아들에게 타이르는 것이니,
우리가 사건의 고비마다 나오는 조선 선비들 행동을 이해하는 데 있어
철학, 역사관, 윤리관으로 이를 점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인생 80년에서 이렇게 철학, 역사관, 윤리관으로 온전히 움직일 수 있는 시기는
딱 20대뿐이다.
그래서 조광조의 죽음에 항의한 청년 사류들의 조선판 데모는 철학, 윤리관, 역사관 아니면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 나머지 노회한 조선 선비들의 행동방식과 그 판단을 결정한 일체는
모두 그들이 소유한 노비와 토지에서 나온다.
이를 지키기 위한 행동의 방향을 먼저 결정하고,
그 다음에 남들 보기 좋게 성리학적 철학, 역사관, 윤리관으로 분식한 것이지,
절대로 그 반대가 아니다.
따라서 남들 보라고 써 놓은 회고록 같은 일기들,
제대로 알고나 썼는지도 의심스러운 문집의 성리철학 이야기들,
도대체 저런 시를 읽고 감동이나 했을까 싶은 임금에 대한 충절을 읊은 시가들,
이런 것으로 조선의 선비를 이해하는 일은 기대 난망이라는 뜻이 되겠다.
조선 선비 문집 만 권 보는 것보다는 솔직한 일기를 한 편 보는 게 더 낫다.
조선 선비들 족보 백 편을 읽느니 호적 자료 한 번 더 보는 게 낫다.
청백리?
조선의 청백리라는 게 도대체 뭘 가지고 붙인 이름인지는 모르겠지만,
청백리라는 건 존재할 수도 없고
존재했다고 해도 그 양반 지위가 그 집안에서는 몇 대 못 가고 사라지게 된다.
조선 양반의 존재 기반은 노비와 토지이지 철학과 역사관이 아니다.